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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깐무덤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부석묘

요약 청동기시대 무덤 양식의 하나.

부석묘라고도 한다. 무덤방[墓室]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돌을 깔고 가장자리를 따라 갓돌을 박아 무덤구역[墓域]을 이루었고 무덤 표면에는 판판한 모양의 돌들을 덮어놓은 형식이다. 이 무덤은 돌널무덤[石棺墓]처럼 땅 위에 아무런 흔적이 드러나 있지 않아 발견된 것이 얼마 되지 않으며 형식이 독특하여 돌무지무덤[積石塚]의 변형이거나 청동기시대 무덤의 특수한 한 양식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은 양평 상자포리, 진양 대평리, 사천 신월 등이 있는데 앞으로 여러 곳에서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발굴 조사로 밝혀진 몇 유적의 자료를 중심으로 이 무덤의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적들에서 나타난 무덤의 둘레선은 비교적 단일한 모습인데 대평리와 상자포리 유적에서는 긴네모꼴로 나타나고 신월유적은 둥근꼴 및 다각형의 형태이다.

무덤방은 돌널[石棺]과 돌덧널[石槨]을 짜넣었는데 무덤을 만들 때 유적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한 것 같다. 한편 무덤 구역 안에서 무덤방은 거의가 1기(基)만 나타나고 있지만 신월유적의 'ㄴ구역'에서는 6기가 발견되어 서로 가까운 핏줄이나 한 집안 식구가 묻힌 가족무덤으로 여겨지며, 황주 긴동, 천진동 및 연탄 평촌유적의 고인돌 무덤방과 비교되고 있다.

돌깐무덤은 물이 흐르는 강이나 작은 냇가와 이웃한 곳에 위치하며 무덤방은 강물의 흐름과 나란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강물과 같이 영원히 살라는 뜻과 함께 강물과 더불어 재생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처럼 무덤방의 방향과 유적이 자리한 곳의 지세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묘제의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덤의 껴묻거리[副葬品]는 민무늬토기[無紋土器] 조각과 석기 몇 점이 고작인데, 이처럼 유물이 적게 나오는 이유는 묻힌 사람[被葬者]의 신분과 함께 당시 사회에서 널리 행해지던 묻기 습속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편 깨진 토기조각이 무덤 안에 흩어져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것은 무덤을 만들 때 있었던 의식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돌깐무덤의 성립 시기는 현재로서 이러한 성격의 무덤이 발견된 예가 적고 껴묻거리가 많지 않아 추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민무늬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으며, 그렇게 늦은 시기의 청동기시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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