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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국 명대(1368~1644)의 지방관서.
병을 맡은 도지휘사사, 민정을 맡은 포정사사(布政使司), 형(刑)을 맡은 안찰사사(按察使司)의 3기관을 아울러 지칭하는 이름이다. 도지휘사사와 안찰사사는 모두 전대(前代)를 답습하여 설치된 것이다.
도지휘사사는 원대(元代 : 1271~1368)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는데, 명대에 이르러서는 각 성(省)마다 설치하여 간단히 도사라고 불렀다.
도지휘사에 임명된 사람은 지방의 최고 군사장관으로 중앙의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에 예속되었다. 경위(京衛)와 외위(外衛)에 모두 지휘사사(指揮使司)가 설치되었고 국경지역에는 노아간(奴兒干)·오사장(烏斯藏)·타감위(朶甘衛) 등의 도사가 설치되었다.
포정사사는 명대 1376년(洪武 9)에 처음으로 설치되었으며, 한 성의 최고 행정장관으로 전국의 부·주(州)·현(縣) 등이 2수도(北京·南京)와 13포정사사에 의해 나누어 다스려졌다. 각 사에는 좌·우포정사가 1명씩 있었다. 이후에 통치를 강화하고자 총독(總督)·순무(巡撫) 등의 관리를 두게 되면서 포정사의 권위는 점차 약화되었다.
청대(淸代 : 1616~1912)에 총독·순무가 정식으로 각 성의 재무와 인사를 전담하게 되어 법률을 전담하는 안찰사와 더불어 양사(兩司)로 불리게 되었다. 안찰사사는 원대 1364년(至正 24)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는데, 당시 주원장(朱元璋)이 스스로 오왕(吳王)이라 자칭하고 호광(湖廣 : 후베이[湖北]·후난[湖南]·광둥[廣東]·광시[廣西]) 각 도에 안찰사(按察司)를 두었고, 그 장관으로 안찰사(按察使)를 두었다. 명 초기에 안찰사는 각 성의 법률을 정하는 안찰사사의 장관으로 한 성의 사법을 주관했다. 명 중엽 이후로 각 지역에 순무가 설치되어 안찰사는 순무의 직속이 되었고 청대에도 계승되었다. 도지휘사사·포정사사·안찰사사의 3사는 서로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함께 지방을 다스렸고, 중앙에서 각기 따로 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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