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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관찰출척사

다른 표기 언어 道觀察黜陟使

요약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지방관직.

고려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도의 행정적 기능이 강화되었다. 또한 대몽항쟁과 왜구와의 싸움 등 군사활동면에서도 지방통치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의 일환으로 1388년(우왕 14) 안렴사를 도관찰출척사로 고치고 품질(品秩)을 높였다.

모두 대간의 천거를 받은 재추양부(宰樞兩府)의 대신으로 임명하고, 부월(斧鉞)과 교서를 주어 부임하게 했다. 이때 교주도와 강릉도가 합해짐으로써 6도 안렴사제도(六道按廉使制度)가 5도 도관찰출척사제로 바뀌었다. 그전에는 경관을 파견하던 것을 1389년(공양왕 1)에 외관직으로 관찰사가 처음 제도화되어 그 임무를 맡았다.

1390년에는 도관찰출척사 밑에 사무기관으로서 경력사(經歷司)를 설치하여 보좌하도록 했으며 양계지방까지 파견했다. 그러나 1392년에 혁파되어 다시 안렴사가 되었다가 조선 건국 직후인 1393년(태조 2) 다시 관찰출척사가 설치되었다. 1401년(태종 1) 1월에 다시 안렴사가 설치되었다가 같은 해 11월에 관찰사로 정비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지방행정단위로서 도의 위치가 정착되어감을 말하며 중앙권력의 지방장악 및 지역방위체제의 강화라는 지배체제의 발전과정을 뜻한다.

그후 1417년(태종 17) 평안도와 함길도의 도순문사도 도관찰출척사로 개칭되었다가, 1466년(세조 12)에 관찰사로 고쳤다.→ 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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