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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에 있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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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도선국사실록 道詵國師實錄〉·〈옥룡사도선국사본비명 玉龍寺道詵國師本碑銘〉에 의해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음을 알 수 있다. 1457년(세조 3) 세조가 신미 스님에게 시주하여 수미와 함께 중창하기 시작해 1473년(성종 4) 완공했다고 한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작은 당간지주가 계단 양 옆에 있으며 북쪽에 3층석탑, 남쪽에 5층석탑이 있는데 이것은 1928년 이후 어느 때인가 옮겨놓아 쌍탑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외에 명부전·미륵전·해탈문(국보 제50호) 등의 건물이 있다. 석불좌상(보물 제89호)과 도선국사비(지방유형문화재 제38호)와 동자상(보물 제1134호)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도선국사와 수미대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도갑사석불좌상
도갑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 보물 제89호. 높이 300cm.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석조불상이었으나 현재는 대좌부분이 남아 있지 않다. 머리와 그위에 있는 큼직한 육계는 나발로 표현되었고 얼굴은 비교적 둥근 편이며 반쯤 뜬 눈과 넓적한 코, 작은 입 등이 특징이다.
어깨폭은 좁고 위축되어 있으며 몸체는 길게 표현되었다. 편평한 가슴 위로는 우견편단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특히 왼쪽 어깨에서 옷끝단이 접혀져서 여러 겹의 주름으로 처리되어 있다.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나 양쪽 팔에 힘이 빠져서 생동감이 없으며 조각기법도 역시 둔화되었다.
광배는 주형광배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연화무늬가 새겨져 있고, 광배 정상부와 머리 양 옆으로 화불이 있고 그 주변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싸고 있다. 이 불상은 얼굴의 세부표현이 예리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평면성이 강조된 신체표현 등에서 고려 초기의 철불좌상이나 마애불좌상과 양식적으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
조선시대에 세워진 도갑사의 정문. 국보(1962.12.20 지정).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주심포 형식의 단층건물이다.
1960년 5월 해체보수 때 종도리 밑의 장여[長舌] 윗면에서 묵서명이 발견되어, 1457년 중건을 착수하여 1473년 완공되었음이 밝혀졌다.
이 문은 가람의 정문으로 사천왕상을 문 앞에 안치하는 사천왕문에 해당되는 건물이다. 현재 사천왕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문의 서쪽에 문수보살, 동쪽에 보현보살을 대신 안치했다. 기단 위에는 자연석으로 초석을 배열하고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헛첨차를 두어 주두 위에 놓인 살미첨차를 받도록 했으며 그위로 대들보를 놓아 결구했다. 대들보 위에 우미량과 포대공으로 종보를 받고 있으며 종보 위에는 소슬합장재와 복화반을 두어 종도리를 받고 있다.
이 문의 건축양식은 기본적으로 부석사 조사당(국보, 1962.12.20 지정)과 같은 계통이지만 주심포 중기 건물로서 여러 가지 세부기법이 골고루 혼용된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즉 어중간한 2출목, 무위사의 보아지형[樑捧形], 부석사 조사당과 관룡사 약사전의 다포계 포대공,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의 마루대공이 혼용되었다. 많지 않은 산문건축의 하나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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