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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5. 6. 24, 미국 콜로라도 메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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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3. 5. 31, 뉴욕 |
국적 | 미국 |
요약
뎀프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복싱선수로 평가받는다. 1919년 7월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제스 윌러드를 3라운드에서 KO로 이긴 뒤, 1926년 9월 필라델피아에서 진 터니에게 판정패를 당할 때까지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그 당시 가장 인기있는 복서였던 그는 그때까지 복싱 역사상 처음으로 500만 달러의 관중수입금을 기록했다.
1914년 복싱을 시작한 그는 1918년과 1919년초에 당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인 윌러드에 대한 도전권을 얻기 위해 많은 경기를 가졌으며 대부분 1라운드에서 KO승을 거두었다. 윌러드를 누르고 세계 챔피언에 오른 그는 6년간 타이틀을 지키다가 터니와의 첫 시합에서 패했다(1926). 1927년 9월 '롱 카운트 전투'로 알려진 시합을 통해 재도전했으나 10라운드 판정패로 패했다. 1914~40년까지 84전 62승 51KO를 기록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장 이상적인 복싱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1919년 7월 4일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제스 윌러드를 3라운드에서 KO로 이긴 뒤, 1926년 9월 23일 필라델피아에서 진 터니에게 10라운드에서 판정패를 당할 때까지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그당시 가장 인기있는 복서였던 뎀프시는 그때까지 복싱 역사상 처음으로 500만 달러의 관중수입금을 기록했다.
뎀프시는 1914년 키드 블래키라는 이름으로 복싱을 시작했다. 1918년과 1919년초에 당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인 윌러드에 대한 도전권을 얻기 위해 많은 경기를 가졌으며 대부분 1라운드에서 KO승을 거두었다. 37세의 노장 챔피언 윌러드는 이 젊은 뎀프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공이 울리자마자 맹공격을 퍼부어 1라운드에서만 7차례나 윌러드를 쓰러뜨렸다.
1923년 9월 14일 뉴욕 시에서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앙헬 피르포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를 때는 1라운드에 링 밖으로 나가떨어진 뒤, 제2라운드에는 피르포에게 야만적일 만큼 격렬한 공격을 퍼부어 그를 완전히 때려눕혔다. 그후 3년 동안 뎀프시는 시범경기만 했고, 31세 때 터니와의 첫 시합에서 지고 말았다. 치밀하게 훈련을 쌓은 터니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던 것이다.
1927년 9월 22일 시카고에서 열린 '롱 카운트 전투'로 알려진 시합에서 그들은 다시 만났다. 뎀프시는 7라운드에 터니를 쓰러뜨렸지만, 중립 코너로 가지 않고 쓰러진 터니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기 때문에 KO승을 거둘 기회를 놓쳤다. 터니는 회복한 다음 끝까지 경기를 치르고 10라운드 판정승을 거두었다. 1930년대에 뎀프시는 많은 시범경기에 출전했지만, 세계 타이틀전을 갖지 않았다.
1940년 무명 선수들에게 3번의 KO승을 거둔 뒤 현역에서 은퇴하여, 복싱과 레슬링 경기의 심판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해안경비대에서 해군소령으로 복무했다. 1914~40년까지 84전 62승 51KO를 기록했다. 나중에 뉴욕 시에서 레스토랑 경영자로 성공했으며 1977년에는 자서전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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