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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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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19년 3월 26일 항일투쟁을 목적으로 창설되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덕창국에 본부를 두었던 항일운동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노인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며, 회원자격 역시 46세 이상 70세 이하의 남녀 노인이었다. 이들은 상해 임시정부의 외부 단체로 활동하며 임시정부의 사업을 지원했고, 군중 앞에서 연설하여 관객을 동원하고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또한 지부장인 강우규는 수류탄을 구하여 남대문 앞에 있던 사이토를 향해 던졌고, 그 자리에서 30여 명의 부상자와 사상자를 발생시켜 노인단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노인단은 이후 1920년 해체되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간도·노령 등지의 해외에서도 독립군의 무장항쟁과 더불어 애국지사·청년들이 국내진공을 위한 무장독립단체를 조직했다. 이에 노인들도 결사구국의 구호하에 동지규합과 자금모금을 목적으로 노인단을 결성했다.

회원자격은 46세 이상 70세까지의 남녀노인으로, 당시 회원수는 50명이었다. 간부진용은 단장 김치보(金致寶), 고문 이순(李舜), 재무 천수점 등이 임명되었다. 박은식이 작성한 〈노인동맹취지서〉는 "조국독립을 회복하지 못하면 해외에서 각고 끝에 전택과 금전을 마련하여 자손에게 남겨주거나 학문과 기예를 전수하더라도 다른 민족의 노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므로 노인동맹단을 구성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이 단체는 상해임시정부(임정)의 외곽단체로서 임정사업을 지원·협조했으며, 단장 김치보는 임정이 시베리아 한인사회에 연통제를 실시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서 부총판에 선정되었으나, 총판으로 선정된 최재형(崔在亨)이 암살당해 실현되지 못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노인단 결성은 임정의 연통제 실시의 연장선상에서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노인단의 주요활동상황을 보면, 1919년 5월 대표 이승교(李承敎:이동휘의 아버지)·윤용옥(尹容玉)·김학영(金學永)·안태순(安泰順:안중근의 숙부)·이발(李撥)·정치윤 등은 일본 덴노에게 보내는 〈독립요구서〉 2통과 조선총독 앞으로 보내는 〈노인단취지서〉 100통을 휴대하고 서울에 도착했다. 이들은 5월 31일 보신각 앞에서 각자 휴대한 태극기를 꺼내 만세를 부르고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는 등 군중시위를 유도하였다. 시위 도중 일제 기동대에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이발은 그 자리에서 자결, 순국했으며 나머지는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다.

한편 랴오허 현[遼河縣] 지부장인 강우규(姜宇奎)가 7월 러시아인으로부터 영국제 수류탄 1개를 구입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원산으로 가서 최자남(崔子南)·허형(許炯) 등과 거사계획을 세우고, 8월에 서울에 잠입했다. 9월 2일 남대문 앞에서 마차에 오르던 사이토[齋藤實]를 향해 수류탄을 던져 3명을 즉사시키고, 34명을 다치게 만들었다. 이 거사로 노인단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졌다. 1920년 4월에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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