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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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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데모스테네스가 BC 351년부터 3차례에 걸쳐 쓴 아테네 정복의 야욕을 드러낸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 대항하는 연설문.

마케도니아에서는 데모스테네스와 거의 비슷한 나이의 젊은 왕 필리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 남쪽 국경의 그리스 도시들을 차츰차츰 합병해가며 아테네를 위협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은 필리포스의 위협이 일시적인 것으로 여겼다.

데모스테네스는 필리포스에 대항하는 연설문인 소위 〈필리포스 탄핵 Philippika〉의 제 1편을 일찍이 BC 351년에 발표했다. 이로써 그는 제국주의적 야심을 가진 마케도니아와 맞서는 세력의 지도자 위치를 확보했으며 그후 죽을 때까지 결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가 말했듯 "그리스를 위해 그가 선택한 길, 즉 필리포스에 대항해 그리스를 지킨다는 것은 고귀하고 정당한 일"이었다. 〈필리포스 탄핵〉 제1편에서 그는 아테네인들에게 한때는 그들이 필리포스만큼 강력한 스파르타를 무찔렀던 점을 깨우쳐주고 만약 필리포스가 아테네인들이 생각하듯 진짜로 겁이 많다면 결코 아테네 땅을 빼앗지 못했을 것이라고 빈정대며 지적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가 필리포스가 이기도록 하지 말고 자신들의 일은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하자고 제의하는 것으로 연설을 끝냈다.

이 연설은 선동적이었지만 아테네인을 자극시키지 못했다. 필리포스가 칼키디키에 침입해 올린토스 시를 위협하자 올린토스는 아테네에 도움을 청했다. BC 349년 데모스테네스는 올린토스 원조를 부추기기 위해 3개의 선동연설(〈올린토스에 관하여〉)을 했으나 올린토스는 아테네에게서 별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이듬해 함락당했다.

마침내 BC 346년 4월 필리포스와 아테네인들은 필로크라테스 평화조약을 맺었다. 데모스테네스는 오랜 싸움이 벌어지리라 예상해 그에 대비할 시간을 어느 정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평화조약에 동의하고 사절단의 일원으로 필리포스와 협상하러 마케도니아에 갔다.

협상 동안 필리포스는 말 잘하는 데모스테네스가 그의 계획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데모스테네스를 무시한 채 대신 데모스테네스와 함께 간 아이스키네스에게만 말을 걸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험악한 원수가 되어 돌아온 뒤 데모스테네스는 아이스키네스를 비난했으며 아이스키네스는 필리포스의 의도가 훌륭하다고 사람들을 설득시켰다.

BC 346년말 〈평화조약에 관하여〉에서 데모스테네스는 필로크라테스 평화조약의 조건을 비난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존중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필리포스는 테베와 스파르타 같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전략을 계속 펴나갔다. 데모스테네스는 필리포스에 대항할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아테네가 파견한 사절단들에 끼어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갔으나 이 여행은 실패로 끝났다. 이에 앙갚음을 하기 위해 필리포스는 사절들의 몇몇 발언에 관해 아테네에 항의했다.

BC 344년 데모스테네스는 〈필리포스 탄핵〉 제2편에서 만약 필리포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자기는 절대 필로크라테스 평화조약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으며 나아가 아이스키네스와 몇몇 사람들이 아테네에 그릇된 안보지향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BC 343년 가을에 발표한 〈나쁜 사절〉이라는 연설에서는 아이스키네스가 허위 보고를 했고 잘못된 의견을 내놓았으며 지시를 따르지 않은 데다가 뇌물을 잘 받는다고 비난했다. 이 문제를 두고 재판까지 하게 되었으나 법정은 아이스키네스를 무죄로 선언했다.

아테네와 마케도니아 사이에는 그뒤 위협과 반격이 계속되었고 BC 341년에는 아테네의 한 장군이 케르소네소스 반도에 있던 마케도니아 점령지 너무 가까이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해 필리포스의 분노를 샀다. 필리포스는 그를 소환하라고 요구했으나 데모스테네스는 〈케르소네소스 반도에 관하여〉에서 마케도니아의 '획책과 계략' 뒤에는 필리포스의 정복 계획을 반대하는 아테네의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야심이 숨어 있다고 했다. 또 그는 "필리포스는 평화 조약을 깨고 우리와 전쟁에 돌입했다"고 선언했다.

그뒤 얼마 안 되어 〈필리포스 탄핵〉 제3편을 연설했다. 이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필리포스 저항 연설 가운데 단일 연설로서는 가장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결과 그는 해군 담당관이 되어 이미 BC 354년에 자신이 제안했던 해군 개혁안을 실행에 옮겼다. 나아가 필리포스에 대항해 테베를 비롯한 아테네의 옛 적과 비잔틴 제국을 포함하는 거대한 동맹을 맺었다.

바다에서는 아테네가, 육지에서는 필리포스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결판도 나지 않는 싸움이 뒤따랐다. 잘 조직된 마케도니아군은 지휘관 한 사람 아래 고도로 훈련된 보병과 기병대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나 그리스 동맹은 본질적으로 민병대 중심의 군대에 의존했다.

BC 338년 그리스 중북부 카이로네아에서 벌어진 전투 때 그리스 동맹군은 필리포스에게 졌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이 전투에 참가했던 데모스테네스는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했건 아니건 간에 그는 이 전투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웅변을 하는 데 뽑혔다.

아테네의 웅변가 겸 외교관인 데마데스에 의해 마케도니아와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결국 필리포스는 그 이상의 행동을 자제했으며 그리스의 패배로 친(親)마케도니아 일파의 세력이 크게 강해졌지만 아테네 정복을 삼갔다.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 sting/wikipedia | CC BY-SA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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