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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레베이

다른 표기 언어 derebey

요약 18세기초 오스만 제국의 중앙 정부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아나톨리아의 봉건 영주들을 일컫는 칭호.

19세기에 이 봉건 영주들이 사라진 뒤, '데레베이'라는 용어는 터키 남부와 동부에서 농민들에게 준봉건적인 권한을 행사한 세습 지주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중앙 정부의 재정과 군사에 대하여 '데레베이'가 지는 의무는 명확히 규정되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은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의 군대에 들어가 복무했으며, 술탄은 그들에게 사령관과 세금 징수인 따위의 적당한 칭호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영토 안에서는 독자적인 지위를 누려, 영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강력한 지방 왕조를 형성했다. 게다가 술탄이 임명한 총독들처럼 짧은 임기로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백성의 복지와 교역 발전에 관하여 장기적인 정책을 세울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이 1768~74년에 러시아와 싸울 때 '데레베이'들의 도움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져서 셀림 3세(1789~1807 재위)가 오스만 제국을 다스리는 동안 그들은 아나톨리아 지방을 대부분 지배했고 중앙 정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807년에 보수파 연합 세력이 셀림을 왕위에서 쫓아내자, 루스추크(지금의 불가리아의 일부)의 '아인'(⁽ayn:호족)인 바이락다르 무스타파 파샤는 셀림을 복위시키는 일에는 실패했지만, 쿠데타를 성공시켜 셀림의 조카인 마무드 2세를 왕위에 앉혔다.

그뒤 바이락다르는 대(大)와지르가 되어, 1808년 이스탄불에서 '데레베이'와 '아인'의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과 술탄의 대리인들은 이 회의에서 그들의 권리·특권·자치권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상호원조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얼마 뒤 마무드 2세는 대부분의 '데레베이'와 '아인'들의 세력을 꺾는 데 성공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이스탄불에서 임명한 총독들이 그 지방을 다스리게 했다. 중앙집권화는 1839년에 마무드가 죽은 뒤에도 계속되었고, 1866년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추쿠로바 지역에 남아 있던 '데레베이'들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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