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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21년 10월 연해주에서 조직된 독립군단체. 1922년 러시아 적군휘하 정규군인 특별보병대대로 편성되면서 큰 활약을 펼쳤다. 이후의 활동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독립부대가 대체로 그렇듯 탄압으로 인해 간부는 검거되거나 망명하고 조직원들은 고향으로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921년 6월에 일어난 자유시참변으로 대한독립군이 불의의 참변을 당하고 뿔뿔이 흩어져 연해주방면으로 이동해 오자, 이용(李鏞)·김규면(金圭冕)·한운용(韓雲用)·임표 등이 이들을 규합하여 대한의용군사회를 조직했다.
간부진용을 보면, 집행위원에 김찬(金燦)·김덕은(金德殷)·임표·이용(李鏞)·마용하·주학섭·강재관·박춘근(朴春根)·최기학(崔基學) 등이었으며, 사령부 사령관에 이용, 참모장 임표, 참모관 한운용·김홍일(金弘一), 재무부장 김덕은, 문화부장 주학섭, 서무부장 김찬, 외교부장에 강재관이었다.
1921년 11월 이만전투에서 한운용 등 역전의 용장들이 전사했으나, 1922년 러시아 적군휘하 정규군인 특별보병대대로 편성되어 용맹을 떨치게 되었다. 이때 사령관 이용은 대대장으로, 김홍일은 부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뒤 이용은 간도방면으로 나갔다. 이용은 이준 열사의 아들로 시베리아에서 많은 군사활동을 한 사람이다.
대한의용군사회의 그뒤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다른 독립운동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일제탄압이 심해지면서 간부는 체포됐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일반 군인들은 제각기 고향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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