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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19년 4월 1일 기호지역에서 수립하려 했던 임시정부.
이종일(李鍾一)의 〈묵암비망록 默庵備忘錄〉(1925)에 의하면, 기호지역에 수립하려 했던 천도교 중심의 대한민간정부이다.
대한민간정부의 각료 명단은 대통령 손병희(孫秉熙), 부통령 오세창,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부장관 이동녕(李東寧), 외무부장관 김윤식(金允植), 학무부장관 안창호(安昌浩), 재정부장관 권동진(權東鎭), 군사부장관 노백린(盧伯麟), 법제부장관 이시영(李始榮), 교통부장관 박용만(朴容萬), 노동부장관 문창범(文昌範), 의정부장관 김규식(金奎植), 총무부장관 최린(崔麟) 등이다.
이 정부의 특색은 첫째, 주도체는 천도교로서 동학정신을 계승 발전하여 보국안민적 차원에서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사상적 맥락과 의식의 성장을 통해 근대지향적 민중종교로 승화하여 군주제의 폐지와 함께 민주사회를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들은 각료 명단에서 보이듯이 대통령을 주축으로 하는 체제하에 10개 행정부처의 장을 '장관'이라고 하는 근대적인 명칭과 정치용어를 쓰고 있으며, 구성원도 천도교도에 치우치지 않고 국내외 인사를 망라하고 있었다.
셋째, 의정원 임무수행을 위해 의정부라는 잠정적인 부서를 두어 당시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던 김규식을 그 장관에 선임했다는 사실은 행정·입법·사법의 삼권분립 형태를 취하려 했던 민주정체적 성격의 민주정부로 발전할 소지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간정부는 3·1운동 개시 1개월 뒤인 4월 1일을 기해 수립하려 했으나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였던 33인이 체포됨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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