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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금의 고령지방에 있었던 가야.
대가야란 명칭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는 금관가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고령지방에 존재한 가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나온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삼국사기〉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니혼쇼키 日本書記〉에는 가라라 나오기도 하며, 구체적으로 반파국이라 칭해지기도 했다. 대가야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시조 이진아고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16대 520년간 지속되었다는 것과 〈동국여지승람〉 고령현조에 시조탄생설화가 나오는 정도이다. 대가야에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은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의 존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치세력이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대두한 시기는 대체로 5세기 후반경이었다고 보고 있다.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연맹이 해체된 이후, 이들 세력들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을 형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흔히 후기가야연맹이라 부른다. 이후 대가야는 6세기에 삼국 관계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로 성장하기도 했으나 562년(진흥왕 23) 결국 신라에 완전 복속되고 말았다.→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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