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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양민학살사건

다른 표기 언어 No Gun Ri Massacre , 老斤里良民虐殺事件

요약 1950년 7월 26일 미군이 충북 노근리에서 피난민들을 학살한 사건. 미국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도 위에 한국인 양민 300여 명에게 기관총을 발사해 200여 명 이상이 숨진 사건이다. 미군 축은 이 사건을 부정했으나 1999년 9월 미국연합통신이 발굴한 문서와 참전미군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2001년 1월 사건이 공식 인정되었고, 2004년 2월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었다.

노근리양민학살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 Idh0854/위키피디아 | CC BY-SA 2.0

노근리사건이라고도 한다.

1950년 7월 26일 미국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 피난민들을 모아놓고 기관총을 발사한 데 이어, 이들이 철로 밑 굴다리로 숨어들자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때 생존자들은 당시 최소한 양민 200여 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

노근리양민학살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사건의 현장였던 경부선 철도교(2008년 11월 촬영). 당시 탄환의 흔적이 남아 있다

ⓒ Charles J. Hanley/위키피디아 | CC BY-SA 3.0

미국 측은 미군이 노근리에서 저지른 만행을 계속 부인해왔으나, 1999년 9월 미국연합통신(AP)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6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일어난 미군의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뒷받침하는 미군 공식문서와 참전미군들의 증언을 전세계에 타전했다. AP가 발굴한 미군 상급부대의 '예하 부대에 보내는 명령서'에 따르면 미군 상급부대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 피난민 500여 명을 '적'으로 취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한국에서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자, 그해 10월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협의에 착수했고, 노근리양민학살사건 정부대책단 및 진상조사반이 구성되었다. 2001년 1월 12일 한·미양국조사단은 노근리 사건이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노근리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2004년 2월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7월부터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었다.

노근리양민학살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노근리 희생자 유해발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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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고발한 영화 〈작은 연못〉(감독 이상우)이 제작되어 사건의 진실과 실체를 널리 알렸다.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전세계에 알린 3명의 AP기자는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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