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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김홍도에 대한 후세의 영향과 평가.
홍백화의 글과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기 壺山外記〉에 의하면,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도량이 넓고 활달해서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고 한다. 스승인 강세황으로부터는 '근대명수' 또는 '우리나라 금세의 신필'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정조는 '회사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고 할 만큼 그를 총애했다.
김홍도가 이룩했던 한국적 감각의 화풍과 경향들은 그의 아들인 김양기(金良驥)를 비롯하여 신윤복(申潤福)·김득신(金得臣)·김석신(金碩臣)·이명기(李命基)·이재관(李在寬)·이수민·유운홍(劉運弘)·엄치욱·이한철(李漢喆)·유숙(劉淑) 등 조선 후기와 말기의 여러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화 발전에 탁월한 발자취를 남겼다.
안견(安堅)·정선·장승업(張承業)과 함께 조선시대의 4대 화가로 손꼽힌다. 그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의 화풍을 추종했던 화가들을 가리켜 김홍도파 또는 단원파라 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 그의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단원풍속도첩〉(보물 제527호)과 개인소장의 〈단원도〉(1784년작)·〈금강사군첩〉·〈섭우도 涉牛圖〉·〈기로세련계도 耆老世聯圖〉(1804년작), 간송미술관 소장의 〈무이귀도도 武夷歸棹圖〉, 호암미술관 소장의 〈단원화첩〉(1796년작, 보물 제782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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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홍도에 대한 평가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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