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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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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경남 충무, 1913. 11. 11
사망 1995. 3. 31, 서울
국적 한국

요약 김용식은 30여년간 한국의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 외무부 장관, UN대사, 주미 대사 등을 역임했다. 외교적 공로를 인정받아 1등 수교훈장, 청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1945년부터 변호사로 일하며 백범 김구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스승인 변영태의 소개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바로 주홍콩 총영사로 임명되며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후로 여러 외교사절 역할을 수행했다. 외무부 장관 시절엔 한국 측이 바랐던 대로 UN에서의 한반도 문제 토의를 연기시켜 당시 극단적인 대결 양상으로 치닫던 남북문제를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대북한 외교정책을 수행했다.

김용식은 소지주의 맏이로 태어나, 중앙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1938년 25세의 나이로 일본 고문사법과(高文司法科)에 합격하여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1946년부터 변호사로 일하면서 백범의 변호를 맡기도 했던 그는 중학교 은사이자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변영태가 필리핀 특사로 임명되자 장관 수행원으로서 외교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이후 필리핀에서 돌아와 변영태의 소개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곧바로 주홍콩 총영사직을 맡았다. 그뒤 주호놀룰루 총영사(1949), 주일공사(1951), 주프랑스 공사(1957), 주제네바 공사(1959), 주필리핀 대사(1962), 외무부장관(1963), 주국제연합(UN) 대사(1964) 등을 역임했다. 1970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1971~73년 외무부장관, 1973~74년 국토통일원장관, 1974년 주영대사, 1977~81년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외무부장관 시절 UN에서 한반도 문제로 인한 소모적인 남북 표대결이 벌어졌을 때는 '토의 연기'라는 아이디어를 짜내 결국 우리측이 원하는 대로 UN에서의 한반도 문제 토의를 연기시키기도 했다. 이는 당시 극단적인 대결 양상으로 치닫던 남북문제를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신임을 받으면서 대북한 외교정책도 수행했다. 이러한 공로로 1등 수교훈장,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198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같은 해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 한영협회장(1986), 민주화합추진위원(1988)등을 맡았으며, 1990~95년 서울평화상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동아일보에 자신이 외교관 시절 겪었던 비사를 〈희망과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으며, 1993년에는 정부수립부터 5·16혁명 직후까지의 외교현장을 정리한 회고록 〈새벽의 약속〉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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