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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7. 1. 14, 전북 고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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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5. 4. 17, 서울 |
국적 | 한국 |
요약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가 되었으며, 1972년 국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 홀 무대에서 판소리를 열창했다, 뮌헨 올림픽 대회 참가공연, 유럽 순회공연 등을 통해 세계에 한국 판소리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국창 송만갑으로부터 <심청가>, <홍보가>를 이수했으며, 정정열에게 <춘향가>, <수긍가>를 배웠다. 이밖에도 김계문에게 향제가곡을, 이승환에게 거문고를, 김종기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으며, 양금과 고전무용, 서예 등에도 다재다능했다. 1937년 창극좌에 입단했고, 1945년에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의 전신인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했다. 1982년 한국 국악대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다.
본명은 순옥(順玉), 아호는 만정(晩汀). 15세에 흥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부터 소리공부를 시작했다. 국창 송만갑(宋萬甲)의 문하로 들어가 〈심청가〉·〈흥보가〉를 이수받고, 17세에는 정정열(丁貞烈)에게 〈춘향가〉·〈수궁가〉를 배웠다. 이밖에도 김계문에게 향제 가곡을, 이승환에게 거문고를, 김종기(金鍾基)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우는 등 거문고·양금·고전무용·서예 등에도 다재다능했다.
1937년 창극좌에 입단했고, 1945년에는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의 전신인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했다. 한편 빅타레코드사에서 정정열·임방울·이화중선 등과 〈춘향전〉을 전편 취입했는데 이때 춘향역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62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9회 '국제민속예술제'에 참가했고, 그밖에도 유럽 각국과 미국 등지의 순회공연에 참가했다.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72년 국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 홀 무대에서 판소리를 열창함으로써 그곳의 비평가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김소희는 뮌헨 올림픽 대회 참가공연, 유럽 순회공연 등을 통해 일찍부터 세계에 한국 판소리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해 1994년 '국악의 해' 기념 국악제를 지휘하기도 한 김소희는 숨을 거두기 얼마 전 "광대는 대중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기생은 자신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광대와 기생이 다른 점이다."라고 말해 철저한 예인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명창 박윤초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특히 후진 양성에 많은 정성을 쏟아, 신영희·안숙선·이명희·박소영 등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2년 한국 국악대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숨을 거두자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으며, 후학들은 국립국악원 박물관에 만정기념실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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