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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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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1. ?. ?, 황해 연백
사망 2019. 2. 23, 인천
국적 한국

요약 국가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 17세 때 내림굿을 받아 3년 동안 굿을 배웠고 19세부터 대동굿을 맡아 했다.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고 있는 가장 큰 무당으로 손꼽히며 철물이굿·만수대탁굿·배연신굿·진오기굿 등 모든 종류의 굿에 뛰어나다. 2004년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을, 독일 베를린에서 윤이상 선생을 위한 진혼굿을 공연했다. 2019년 2월 별세했다. 그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단꽃길>(2013)과 장편영화 <만신>(2014)이 있다.

김금화(金錦花)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이다.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고 있는 가장 큰 무당으로 손꼽히며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진오기굿 등 모든 종류의 굿에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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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 제82호로 지정된 무속 예술인.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12세 때 무병(巫病)을 앓았으며 17세 때 옹진군의 큰 만신이었던 외할머니 권천일에게 내림굿을 받았다. 해남군 버르대에 있던 안만신에게 2년 동안 굿을 배웠고, 관(官)에서 굿을 하여 관만신으로 불리던 권씨라는 무당에게 3년 동안 굿을 배웠다. 그뒤 19세부터는 독립하여 대동굿을 맡아 했다.

뛰어난 기억력과 솜씨로 옹진·해주·연백 등에서 큰 굿을 많이 했으며, 고향에서는 '님새'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연평도 어장의 풍어를 기원하는 큰 굿 풍어제는 일품이다. 월남한 뒤에는 고향에서부터 함께 무업에 종사하던 방수덕과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 서울로 옮겼다. 197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 연기상을 받은 뒤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사절단으로 미국에서 2달 동안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1983년 인천 화수부두에서 배연신굿을 공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여 무속 예술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배연신굿은 황해도 해주, 옹진, 연평도 일대에서 성행하던 배굿이며, 대동굿은 마을 단위로 행해지던 굿을 말한다. 1995년 한중수교 3주년 기념행사에서 개막공연의 일부로 호암아트홀에서 <김금화 대동굿>을 공연하기도 했다.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이 되었고, 2004년에는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을 벌였고, 독일 베를린에서 윤이상 선생을 위한 진혼굿을 공연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인천 강화도에 후진을 양성하고 무속문화를 전승하기 위한 시설인 '금화당'을 열었다. 그녀의 제자로 정옥련·김경화·이옥자·김매물 등이 있다. 김금화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단꽃길>(2013)이 있으며, 2014년 그녀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만신>(감독 박찬경)이 토론토 릴 아시안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았다. 2019년 2월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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