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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4. 5. 10, 충남 논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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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0. 8. 31 |
국적 | 한국 |
요약
시인. 가난한 자신과 이웃에 대한 연민을 노래했다. 대표작으로 <연>, <계곡에서>가 있다.
초기에는 전통적 서정을 읊다가 차츰 가난한 자신과 이웃에 대한 연민을 노래했다. 본관은 사천. 호는 추수(秋水)·우현(又玄).
한약방을 경영하던 아버지 낙희(洛羲)와 어머니 정성녀(鄭性女)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4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1952년 강경상고를 졸업한 뒤 충남대학교에 입학했다가 고려대학교에 편입, 1953년 다시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옮겼으나 중퇴했다. 강경상고를 다닐 때 정인보·최남선 등 한학의 대가를 찾아가 성리학·동양학을 공부했다. 1954년 서정주의 처제인 방옥례(方玉禮)와 혼인했다. 여주농고·서울공고·서울상고 등의 교사를 지냈고, 1958년 세계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1960년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여 재산을 다 날린 뒤, 죽을 때까지 특별한 직업 없이 살았다. 심한 주벽(酒癖)과 기행을 일삼아 천상병과 함께 문단의 기인으로 많은 화제를 남겼다. 가난과 10여 년 동안의 병마로 인해 36세에 요절했다.
1955년 〈연 蓮〉·〈계곡에서〉·〈자하문 근처〉 등이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문단에 나왔으나, 이미 그전에 첫번째 시집 〈낙화집〉(1952)을 펴낸 적이 있었다. 1955년 이형기·이중로와 함께 시집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와, 1956년 〈김관식시선〉을 펴냈다. 청춘의 슬픔과 자연과 생명에 대한 기쁨을 읊은 초기의 작품들은 젊은 날의 서정주를 연상하게 한다.
그후에 씌어진 시들은 어려운 한자를 많이 써 동양의 유학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허세로 기울고 있어 삶의 절실한 체험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1960년대 후반에 와서는 이런 결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을 노래했다. 대표작으로 〈연〉·〈귀양가는 길〉·〈동양의 산맥〉·〈다시 광야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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