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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생티에리

다른 표기 언어 Guillaume de Saint-Thi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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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085경, 로어로렌 리에주
사망 1148. 9. 8(?)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수사(修士)·신학자·신비주의자.
(영). William of Saint-Thierry.

중세초의 합리주의 철학을 반대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캔터베리의 성 안셀무스가 제창한 철학신학(후에 스콜라주의라 불림)을 옹호한 랑(Laon)의 앙셀름에게서 배웠다. 1113년 랭스의 베네딕투스회 대수도원에 들어간 후 성서와 교부들의 저서에 정통하게 되었다. 1119년 랭스 근처 생티에리 대수도원 원장에 선출되자 교회행정보다는 명상과 저술에 몰두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으나, 친구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의 권고를 받고서 그 직위를 지켰다.

이 기간 동안 〈사랑의 본질과 고귀함에 관하여 De natura et dignitate amoris〉와 〈하느님을 명상하는 일에 관하여 De contemplando Deo〉를 썼는데, 이 두 책은 그의 신학체계의 근간을 이룬다. 성찬식에 대한 논문 〈제단의 성례전에 관하여 De sacramento altaris〉는 이전에 자기에게 책 2권을 헌정했던 베르나르두스에게 바쳤다.

1128~35년에는 서방 그리스도교와 동방 그리스도교의 신학 및 신비주의를 종합하려는 여러 논문들과 성서 주석들을 편집했고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사상을 집대성했다. 저서 〈명상 기도 Meditativae orationes〉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Confessions〉에 견줄 만한 강렬한 영적 관심을 나타냈다. 1135년에 명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아르덴에 있는 시토 수도회 소속의 시그니 수도원(Cistercian Monastery of Signy)에 들어가 그곳에서 1144년에 〈신앙의 거울 Speculum fidei〉과 〈신앙의 수수께끼 Aenigma fidei〉를 써서 영적 생활과 신앙문제에 관한 의문들을 다루었다.

같은 해에 랭스 근처 몽디외의 카르투지오 수도회 소속의 수도원을 방문한 뒤 〈몽디외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 Epistola ad fratres de Monte Dei〉를 썼는데, 이 책은 명상생활의 가치에 대한 중세 저서들 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작품으로 '황금의 편지'로 불렸다.

기욤은 자신의 신비주의에 관한 교리의 핵심요소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가운데, 영혼은 설사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지라도 땅에서 사는 동안 신적인 기원으로의 신비스러운 '복귀'를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을 내장하고 있으며, 그 복귀는 단계적으로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장애들로부터 단계적으로 해방되어 결국에는 회상·이해·사랑의 과정을 거쳐 하느님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기욤의 저서들은 J.P. 미뉴가 편집한 〈라틴 교부전집 Patrologia Latina〉(180권, 1890)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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