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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케 자매

다른 표기 언어 Sarah (Moore) and Angelina (Emily) Grimk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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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05. 2. 20, 1792. 11. 26, 찰스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사망 1879. 10. 26, 1873. 12. 23, 하이드파크, 매사추세츠 하이드파크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노예제폐지운동가이며 여권운동가 자매.

그림케 자매(Sarah (Moore) and Angelina (Emily) Grimké)

ⓒ Geagea/wikipedia | Public Domain

아버지가 미국 최남부 지방에서 노예를 부리는 귀족 판사였는데도 이들 자매는 어릴 적부터 노예제도를 싫어했다. 20대에 필라델피아에서 퀘이커교도의 모임인 '형제회' 회원이 되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고 북부로 이사한 뒤 마침내 노예제폐지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835년 동생 안젤리나가 노예제폐지론자의 기수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에게 그의 입장에 찬동하는 편지를 썼고 개리슨은 자신이 펴내는 신문 〈리버레이터 The Liberator〉에 그 편지를 발표했다.

다음해 그녀는 〈남부 그리스도교 여성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An Appeal to the Christian Women of the South〉이라는 열정적인 글을 썼는데, 그 글 속에서 남부의 여성들이 사람들에게 도의적인 권고를 해서 억압적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곧이어 언니 새라 역시 〈남부 성직자들에게 보내는 서한 An Epistle to the Clergy of the Southern States〉에서 똑같은 호소를 했다. 자유주(自由州)의 노예제폐지운동가들은 이런 감동적인 호소문들을 환영했으나 사우스캐롤라이나 관리들은 그림케 자매가 쓴 글들을 불태우고 그들이 고향에 돌아오면 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시기에 자매는 어머니를 설득해 그들에게 상속될 노예들을 풀어줌으로써 자신들의 진심을 보여주었다.

그림케 자매의 연설 경력은 안젤리나가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집에서 열린 여성들의 작은 모임에서 연설했을 때부터였다. 1836년 그들은 뉴욕으로 가서 교회나 공공건물 같은 좀더 큰 모임에서 연설했다. 그들이 뉴잉글랜드에서 여러 청중들에게 강연하자 '매사추세츠 조합 교회성직자총협회'는 여성 전도사들과 개혁가들을 혹평하는 설교조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때문에 그림케 자매는 여권운동의 선봉이 되었고 여권운동을 노예제폐지운동과 연계시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1838년 안젤리나는 유명한 노예제폐지론자 시어도어 드와이트 웰드와 결혼했다. 오래지 않아 건강이 나빠지자 그녀는 대중연설을 포기했으며 새라도 동생을 따라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림케 자매는 웰드를 도와 뉴저지의 자유주의학교를 운영했고 그를 따라 매사추세츠로 이주해 노예제폐지론과 여권운동에 계속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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