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893. 7. 26, 독일 베를린 |
---|---|
사망 | 1959. 7. 6, 베를린 |
국적 | 독일 |
요약 독일의 화가.
당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풍자만화와 회화를 그렸다. 전쟁과 그 타락상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여 나치는 그를 '문화 볼셰비키 제1호'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그의 작품을 가리켜 '인류사에 나타난 인간의 부패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카탈로그'라고 평가했다.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풍자만화를 잡지사에 팔아 모은 돈으로 파리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면서 그림 수업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보병에 지원했다가 1916년 상이병으로 제대하여 베를린의 다락방 화실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매춘부나 코·다리가 없는 퇴역군인을 스케치하면서 전쟁의 황폐와 허무를 표현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는 훈련조교로 군에 소환되었고, 나중에 탈영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군수용소에 갇혔다. 수용소 경험으로 그로스의 묘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독일, 어느 겨울 이야기 Germany, A Winter’s Tale〉(1919)와 1920년대초의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 Ecce Homo〉 연작 등의 상징주의적인 작품에서 그는 뚱뚱한 귀족, 거드름 피우는 부르주아, 술주정뱅이, 호색가, 그 시대의 위선자, 방독면을 쓴 예수 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경찰이 그의 화판을 부수었고, 종종 생명의 위협을 받아 경호원을 기용하기도 했다.
이당시 그는 다다이즘 운동에 가담했으며 이 운동을 가리켜 '파산한 세계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한 광기의 조직적인 이용'이라고 했으며, 작품 〈카페 Café〉(1925)에서 볼 수 있듯이 점차 신즉물주의에 관여하여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의 체념과 냉소주의를 표현했다.
193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시사만화·누드·풍경을 그렸으며, 그의 임명을 놓고 논란을 벌였던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Art Students League)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생존자 The Survivor〉(1944)처럼 선명한 채색과 창의력 넘치는 유화로 자신의 오랜 비관주의를 표현했다. 1938년 미국 시민이 되었지만, 1959년 잠시 베를린을 방문했다가 3주 만에 그곳에서 죽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화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