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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통일주비회

다른 표기 언어 軍事統一籌備會

요약 1921년 4월 시베리아, 하와이, 국내의 독립운동단체들이 베이징에서 독립군과 독립운동단체들의 통일을 위해 모인 회합.

당시 해외 독립운동단체들은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방침을 놓고 대립하고 있었으며,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22개의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이에 신채호, 박용만, 신숙 등은 독립운동단체들의 통일을 위해 1920년 9월 베이징에서 군사통일회를 발기하고 배달무(裴達武)를 남만주, 남공선(南公善)을 북만주에 파견하여 독립군 대표들의 회합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런데 만주 지역 무장역량이 일제의 대토벌에 밀려 시베리아로 이동했기 때문에 회합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로도 독립운동 세력을 통일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1921년 광복단, 청년회, 노동당, 통일당, 간도국민회, 서로군정서, 대한국민의회, 하와이 국민회, 하와이 독립단 대표들이 모여 군사통일주비회를 개최했다. 주비회에서는 각 독립운동 세력의 통일을 이루어 국내진공과 국경지대에서의 치안교란 문제를 토론하고자 했다. 그런데 독립군의 지휘권 문제를 놓고 임정 군무부(軍務部)가 담당해야 한다는 견해와 새로운 군사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박용만이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의 비위사실을 폭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원래의 의제와 상관없는 임정 및 의정원의 불신임안이 가결되고, 임정의 해산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내기도 했다. 이후 군사통일주비회는 장차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무기정회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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