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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원

다른 표기 언어 國樂院

요약 해방직후 건설된 진보적 전통음악인 조직.

대한국악원이라고도 한다. 현재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구왕궁아악부(이전에는 李王職雅樂部)와 다른 조직이다. 해방 전 조선음악협회의 조선음악부 부장이었던 함화진과 박헌봉 등은 해방직후에 조선음악건설본부의 국악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왕직아악부와의 통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통합하지 못하고 국악건설본부로 독립했다.

이 조직은 1945년 8월 15일 국악회로 발전하였다가 그해 10월 10일 국악원을 설립한 것이다.

국악원은 "조선전통의 음악예술, 과거 특권계급에게 독점되었던 음악예술을 조선민중에게 절대 개방을 기함"으로 강령을 내걸고 조선문화단체총연맹에 가입하기도 했고 조선음악가동맹과 관계를 가지면서 문화전선을 공동으로 펼쳤다. 또한 국악원은 1945년 11월 11일에서 18일까지 창극 〈대춘향전〉을 창립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에는 국악원 직속기관인 국극사(1945. 11. 5 창단)가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이를 계기로 국극협회·조선창극단·김연수창극단·임방울 일행 등 5개 단체가 국악원 산하로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중심인물인 함화진이 이미 이왕직아악부의 5대 국악사장을 지낸 바 있고, 아악부 중요인물들이 국악원으로 들어왔으므로 양적으로도 당시 최대의 국악인 조직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따라서 민속악·창악 중심의 좌파적 성격을 가진 국악원은 아악만을 위주로 왕실의 보호를 받아오다가 한일합병 이후 시련을 겪던 구왕궁아악부와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47년부터 미군정이 좌익을 불법화시키면서 위원장 함화진이 피검되는 등 위기에 처했고, 1948년 아악부국영안이 통과되어 아악부가 국가적 지원을 받게 되자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6·25전쟁이 일어나고 국악원 소속회원 공기남·안기옥·임소향·정남희·조상선·최옥산 등이 대거 월북하자 이 조직은 해체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후 함화진은 1949년 6월 사망했다.

소속회원은 함화진·박헌봉·유기룡·장연식·김윤덕·김천흥·정남희·최경식·이병성·임서방·정원섭·오태석·정남희·조상선·강장원·한갑득·김재선·장영찬·박녹주·김소희·임소향·박귀희·조순애·김주종·김주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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