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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 후기 이규보가 술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작품.
이규보(李奎報 : 1168~1241)의 문집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과 〈동문선 東文選〉에 실려 있다. 국성(맑은 술)의 자(字)는 중지(中之)이며 주천(酒泉) 사람이었다.
그의 조상은 온(溫)지방 사람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의 아버지 때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을 하였다. 국성은 어려서부터 이미 국량이 깊었고, 유령(劉伶)·도잠과 더불어 벗으로 지냈다. 임금이 기특히 여겨 벼슬을 주니 무릇 조회의 잔치와 제사, 천식(薦食)·진작(進酌)의 예에 한치의 어그러짐이 없어, 마침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국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혹(텁텁한 술맛)과 역(쓰고 진한 술)이 아버지의 총애를 믿고 자못 방자하게 굴다가, 중서령(中書令) 모영(毛穎 : 붓의 의인화)의 탄핵을 입어 자살을 하고 국성은 서인(庶人)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같이 국성이 파면된 틈을 이용해 제(臍)와 격(膈) 지방에서 난리가 일어나자 다시 국성을 불러 원수(元帥)로 삼았다. 국성은 수성(愁城)에 물을 대어 한번에 적을 함락시켰고, 그 공으로 상동후(湘東侯)에 봉해졌다. 그후 국성은 여러 번 표를 올려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다.
작품의 끝에 "국씨는 대대로 농가였고, 국성이 두터운 덕과 맑은 재주로 임금의 심복이 되어 나라 정사를 짐작하고, 임금의 마음을 기름지게 함이 있어 거의 태평한 지경의 공을 이루었으니 장하도다"라고 평하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국성을 한 국가의 신하로 설정하고 있다. 임금을 도와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는 공신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역시 술을 의인화한 작품인 임춘의〈국순전 麴醇傳〉이 술의 나쁜 점을 취해 현실을 풍자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작품은 술의 좋은 점을 취해 의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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