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619, 일본 교토[京都] |
---|---|
사망 | 1691. 9. 9, 시모후사[下總] |
국적 | 일본 |
요약 중국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의 사상을 이어받은 일본의 정치사상가.
왕양명의 사상을 자신의 실생활에서 실천하려고 힘쓴 최초의 일본인이다. 로닌[浪人:주군이 없는 사무라이]으로 태어났으며, 매우 총명하여 15세 때 오카야마[岡山]의 봉건영주 이케다 미쓰마사[池田光政]에게 발탁되었다.
독학으로 공부하다가 반사변적(反思辨的)이고 직접적인 행동에 중점을 두는 왕양명의 사상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문제를 상식적으로 해결해서 크게 존경받았으며, 1647년에는 로닌 가문으로서는 유례없는 영광인 오카야마의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농업장려책 중에서 과거 일본이 실시했던 물물교환 경제체제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반대에 부딪히자 결국 1656년 은퇴한 뒤 여생을 학문연구와 저술활동으로 보냈다.
그는 철학 저술에 널리 사용되어왔던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구어체의 일본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자주성을 보여주었고 당시의 정부를 비판했다. 즉 관리의 승진은 세습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야 하며 경제발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더 커져야 하고 봉건영주에 대한 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정부를 격노하게 하여 그는 여생을 정부의 감시 아래 또는 감금상태에서 보내야만 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