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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 말기에 원나라에 보낼 여자를 선발하고자 설치한 특별관청.
'과부처녀추고별감'이란 명칭이 역사서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1276년(충렬왕 2)이다. 그해 음력 윤3월, 원나라에서는 양중신을 사신으로 보내어 예물로 쓸 비단과 함께 귀부한 군사 500명에게 줄 여자를 요구했다. 이에 왕은 과부처녀추고별감의 관리 5명을 지방으로 파견하여 여자를 선발하게 했고 같은 해에 귀부군행빙별감이라 개칭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무인을 많이 등용하여 재상을 삼았으므로 기구를 설치하고 명칭을 짓는 데 있어 이러한 천박하고 졸렬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앞서 1274년(원종 15)에는 결혼도감이 설치되어 원나라에 보낼 여자들을 구했다. 즉, 원종 15년 음력 3월 원나라에서는 매빙사 초욱과 함께 만자군의 혼인을 위하여 관용비단[官絹] 1,640단(段)의 납폐물을 보내어 남편이 없는 여자 140명을 급히 요구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결혼도감을 두고 가을까지 역적의 처, 독신녀, 파계승의 딸 등을 강제로 선발하여 그 수효를 채우니 백성들의 원망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뽑힌 여자들에게는 치장할 비용으로 비단 12필씩이 주어졌다.→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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