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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군

다른 표기 언어 公州郡

요약 충청남도 중앙부에 있던 군.

1995년 공주시에 통합되어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지금의 공주시 유구읍·이인면·탄천면·계룡면·반포면·장기면·의당면·정안면·우성면·사곡면·신풍면 등 1개읍 10개면 185개 동리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공주군이 위치했던 지역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장기면 장암리(석장리유적)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구석기 유물·유적이 발견되어 사람의 거주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게 된 것은 475년 백제가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면서부터로, 백제 웅진시대의 산성·고분이 지역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는 이곳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으며, 신라가 이곳을 차지한 뒤 웅천군(熊川郡)을 삼았다가 685년 웅주(熊州)로, 757년에 웅주도독부로 개칭했다.

신라 말기에 후백제의 영토에 속했다가 고려조에 들어 940년 현재의 이름인 공주로 바뀌었다. 983년 공주목을 설치했다가, 995년에는 안절군절도사(安節軍節度使)를 두어 하남도(河南道)에 속했으며, 1012년 안무사로, 1018년 지부사(知府事)로 강등되는 등 변경이 잦았다. 1341년 공주목으로 승격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목이 유지되어 충주·청주·홍주와 함께 충청도 4대 고을의 하나로, 차령산맥 이남의 중심지였으나 인조·현종·영조·정조대에는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별호는 회도(懷道)였다.

1895년 지방제도개편으로 공주군이 되면서 공주부가 설치되어 27개군을 관할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충청남도 공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두입지였던 구즉·탄동·천내·유등천·산내 등의 면이 회덕군으로,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현내면이 대전군으로, 삼기면·명탄면·양야리면이 연기군으로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크게 축소되었다.

또한 1932년 신설도시인 대전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함에 따라 공주는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1931년 공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 공주읍이 시로 승격되어 공주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지방행정구역개편으로 공주시에 통합되어 도농 복합형태의 새로운 공주시를 이루었다.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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