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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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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리나라에 공소가 설립된 것은 신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초기 교회시절부터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공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수원교구 평택본당 소속의 대추리 공소로 1799년 이승훈이 평택 현감으로 있을 때 설립했다. 나머지 공소 중에서 박해기가 지나고 신교의 자유가 허락되기 시작한 1880년대 후반까지 44개, 1890년부터 1949년까지 205개, 1950년부터 1960년대 사이에 591개, 1970년대 이후 설립된 것이 211개로서, 총 1,000여 개를 넘고 있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첫 모습은 공소였으며, 천주교회 100여 년이 '공소시대'였다. 즉 우리나라에서 공소는 교회의 모태였으므로 공소의 역사가 바로 교회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공소 교우들의 모임장소인 강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는 집전되지 못하고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예비자 교육, 공소 교우들의 교리 교육, 교적정리, 공소재산 관리, 냉담자 권면, 전교 이외에 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이 행해지며,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서만 성사가 집행된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에서는 신부가 1년에 봄과 가을 2번 공소를 방문하기 때문에 이를 '춘추공소'라 불렀고, 또 신부방문 때 주로 집행되는 성사가 판공성사(判功聖事)였기 때문에 신부가 봄에 방문하는 것을 '봄판공', 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가을판공'이라 불렀다. 그리고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기 전에 공소방문 일정과 교우들이 유의해야 할 점을 기록한 배정기(排定記)를 미리 공소에 보내는 것이 관례였고, 이에 대해 공소회장은 신부의 방문을 전후하여 공소의 상황을 적어 신부에게 보고했다.

우리나라에 공소가 설립된 것은 신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초기 교회시절부터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공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수원교구 평택본당 소속의 대추리 공소로 1799년 이승훈이 평택 현감으로 있을 때 설립하였다. 나머지 공소 중에서 박해기가 지나고 신교의 자유가 허락되기 시작한 1880년대 후반까지 44개, 1890년부터 1949년까지 205개, 1950년부터 1960년대 사이에 591개, 1970년대 이후 설립된 것이 211개로서, 총 1,000여 개를 넘고 있다.

현존하는 것으로 설립연도가 밝혀진 공소의 수는 1,051개이고, 여기에 속한 신도의 수는 16만 6,149명으로 전체 가톨릭 신자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교구별 공소수를 보면, 100개 이상의 교구가 7개로, 교구 평균 공소수는 115.7개로 밝혀졌다. 또 교구별 공소 신자수를 보면, 공소 신자 2만 명 이상의 교구가 2개 교구이고, 1만 명 이상의 교구는 7개 교구이며, 교구 평균 공소 신자수는 1만 1,077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공소의 대부분이 농촌의 산간 및 평야지대에 있었고, 공소가 있는 촌락은 대체로 영세소농마을로 저소득 및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교육 및 보건조건에서도 매우 열악했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첫 모습은 공소였으며, 천주교회 100여 년이 '공소시대'였다. 즉 우리나라에서 공소는 교회의 모태였으므로 공소의 역사가 바로 교회의 역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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