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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1. 4. 21, 경남 충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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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7. 11. 24, 서울 |
국적 | 한국 |
요약
공덕귀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행동하는 신학자로서 평생에 걸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회복, 여성문제 해결 등을 추구하며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여장부였던 어머니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과 독립심 강한 여성상을 배우며 성장했다. 1948년 조선신학대학 전임강사로 재직 중에 당시 서울시장이던 윤보선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윤보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그녀도 경무대를 떠나야 했다.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초대 인권위원장을 지냈고 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양심범가족협의회 등에서 일했으며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장,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으로 동분서주하는 등 한국 사회의 춥고 어두운 곳을 돌보는 데 앞장섰다. 1990년 남편과 사별했다. 자서전 <공덕귀─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1994)를 남겼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행동하는 신학자로서 평생에 걸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회복, 여성문제 해결 등을 추구하며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공덕귀는 여장부였던 어머니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과 독립심 강한 여성상을 배우며 성장했다. 일신고등여학교와 일본 요코하마[橫浜] 신학교에서 수학했고 일제강점기에는 2번씩이나 일본경찰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1948년 조선신학대학(지금의 한신대학교)에 전임강사로 재직하던 중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신학대학으로 유학갈 준비를 마쳤으나, 주위의 간곡한 권유로 당시 서울시장이던 윤보선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그러나 대통령 영부인의 지위도 오래 가지 못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윤보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그녀도 경무대를 떠나야 했다.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초대 인권위원장을 지냈고 순교자기념사업회, 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3·1사건가족대책협의회, 양심범가족협의회 등에서 일했으며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장,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으로 동분서주하는 등 한국 사회의 춥고 어두운 곳을 돌보는 데 앞장섰다. 1983년에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여성분과위원장, 교회일치·평화·통일을 위한 '민족의 어머니' 운동을 이끌었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 실행위원이기도 했던 그녀는 1990년 남편과 사별한 뒤 1992년부터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결성에 참여해 1993년 일생의 소원이었던 이스라엘 성지를 여행하기도 했다.
자서전 〈공덕귀─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1994)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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