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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65. 6. 13(구력 6. 3), 러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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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37. 4. 25(구력 4. 14), 상트페테르부르크 |
국적 | 러시아 |
요약 러시아의 정치가.
러시아의 전제주의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차르 표트르 1세의 명령으로 1697년 이탈리아에서 군사업무를 연구했고 대북방전쟁 때는 구원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1704) 스웨덴과 싸웠다. 그뒤 키예프 지사(1715~19), 원로원 의원(1719 이후), 재무장관(1719~22)을 지냈다.
그러나 귀족들의 특권을 빼앗고 하층계급 출신을 고위관리로 등용하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을 근본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에 1724년 표트르에게 미움을 받아 모든 공직을 빼앗겼다. 예카테리나 1세(1725~27 재위)가 즉위해 옛 지위를 회복했으나 여제(女帝)가 죽고 그녀의 측근이었던 알렉산드르 멘슈코프 공이 세력을 잃은 1727년 뒤에야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직위에 올랐으며, 표트르 2세(1727~30 재위)를 실제로 통제하던 추밀원(樞密院:1726 창설) 의원이 되었다.
1730년 표트르 2세가 죽은 뒤 골리친은 추밀원을 설득해 표트르 1세의 조카딸인 쿠를란트 공작부인 안나 이바노브나에게 황제위를 물려주도록 했고 안나에게는 전제군주가 가진 여러 가지 중요한 특권을 추밀원에 넘겨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안나는 미타우(옐가바)에서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문서에 서명했으나 모스크바에 도착해 황실 근위대가 그 조건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문서를 찢고 추밀원을 해산시켰다. 그뒤 골리친은 은퇴했으나 그의 반전제군주적 이념이 문제가 되어 1736년 체포당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안나 여제의 명령으로 감형되어 슐뤼셀부르크(지금의 페트로크레포스트) 요새에서 종신형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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