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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예비행

다른 표기 언어 stunt flying , 曲藝飛行

요약 죽음을 무릅쓰고 대담한 기술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

이런 비행은 1890년대 브라질의 비행 선구자 알베르투 산투스 드몽이 파리 상공에서 보여준 특이한 행동과 미국의 타이니 브로드위크(옛 姓은 조지아 앤 톰슨)의 낙하산 강하(1908~14) 등과 같은 기구를 탔던 사람들의 죽음을 무릅쓴 곡예에서 비롯되었다.

초기의 가장 뛰어난 곡예비행사는 기구로 시작했다가 비행기로 바꾼 링컨 비치(1887~1915)로, 항공기 발명가 글렌 커티스의 선전을 위해 미국 전역을 곡예비행하며 다녔다. 그는 15만여 명의 관객 앞에서 나이애가라 폭포의 골짜기로 급강하했으며, 인터내셔널 브리지 아래로 비행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초기에 고도 및 거리에 있어서 기록을 세웠으며 새로 개발한 공중회전술을 시도했지만,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만(灣)에서 급강하한 뒤에 수평으로 비행하는 묘기에 실패하여 사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 치열한 공중전은 그후의 곡예비행사들에게 훈련기반을 제공했다. 이멜만 반전비행(Immelmann turn)은 독일의 1등조종사가 시도했다. 전쟁이 끝난 뒤 특히 미국에서는, 비행기는 풍부하지만 비행기가 사용되는 일이 부족하여 곡예비행이 성행했는데, 종종 공중서커스라고 할 정도로 정교했으며, 비행기 조종, 낙하산 강하와 더불어 날개 위를 걷는 묘기도 추가되었다. 찰스 린드버그는 초기에 곡예비행을 했는데, 비행뿐만 아니라 날개 위를 걷는 묘기도 보였다. 타이니 브로드위크 등 초기의 낙하산 강하 흥행처럼 곡예비행도 관중을 끌기 위해 행해졌고, 이런 공연의 경제적 기반은 잠깐 동안의 비행관람을 한 뒤 관중들이 내는 요금이었다.

다리가 있는 도시, 특히 런던이나 뉴욕 시처럼 다리가 줄지어 있는 도시에서는 즉흥적으로 곡예비행을 하기 일쑤였다. 최후의 유명한 곡예비행사는 더글러스 코리건일 것이다. 그는 대서양 횡단 비행을 허가받지 못하자 1938년 뉴욕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계획을 세우고 이륙한 후 대신 아일랜드로 비행하여 '길 잃은 코리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곡예비행이 사라지자 1953년에 설립된 실험항공기협회(Experimental Aircraft Association)가 이를 대신했고, 회원들은 위스콘신 오시코에서 열리는 연례모임에서 낡은 민간비행기 및 개조된 군용기로 고등비행술과 정밀비행뿐만 아니라 옛날의 조종술도 보여주었다. 곡예비행은 각 나라의 공군 편대에 의해서도 연출된다.→ 곡예비행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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