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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3. 8. 31, 미국 뉴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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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3. 3. 16, 뉴욕 |
국적 | 미국 |
요약 1940~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라디오·텔레비전 진행자.
그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인기가수와 연예인들이 배출되었다. 신문기자·작가·강사인 아버지를 둔 아서 고드프리는 뉴욕 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뉴저지에서 자랐다. 14세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왔다. 3년 동안 많은 일자리를 떠돌다가 미 해군에 입대하여 무전병 훈련을 받았다. 4년 동안 복무한 후 1927년 미국 해안 경비대에 들어가면서 해안 경비대 위문공연 프로그램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후 연예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해안 경비대 위문공연을 계기로 볼티모어 라디오 방송국(WFBR)과 유대를 맺게 되어, 군에서 제대한 후 그 방송사에서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나중에는 아나운서로 활동했으며, 그뒤에 방송국 이사가 되었다.
고드프리는 프로그램을 편안하게 진행해 다른 출연자들과 이내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청취자들까지도 그들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갖도록 했다. 그는 또 자신의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광고에 대해 종종 농담조의 반박을 덧붙이곤 했는데 이러한 그의 빈정거림은 청취자들을 즐겁게 하여 오히려 상품을 더 잘 팔리게 했다. 1940년대에는 방송중에 초대손님과 나누는 격의없고 부드러운 농담으로 인기가 매우 높아져 수년간 컬럼비아방송국(CBS)에서 매일 방송되는 2개의 프로그램과 1개의 주말 프로그램을 맡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구성형식을 성공적으로 텔레비전에 응용시켜, 여유있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버라이어티 쇼의 형식으로 독특한 포맷을 구성했다.
1959년 폐암에 걸렸다가 그후 병에서 회복되었지만, 1972년까지 라디오 방송을 하지 않았다. 그후 텔레비전 방송에 다시 출연했으나 전처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해군과 해안 경비대에서 근무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예비역 해군장교의 대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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