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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1945년 10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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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신문사 |
소재지 | 수원본사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290, 인천본사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남동대로 773 |
사이트 | http://www.kyeongin.com |
요약 경기도와 인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지역 일간지. 1973년 9월 1일 경기도 내에서 발행하던 <연합신문>·<경기매일신문>·<경기일보>를 통합하여 창간한 <경기신문>의 후신이다. 1982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같은 해 3월 1일 <경인일보>로 이름을 바꾸었다. 창간 때 발행인은 홍대건이었다. 처음에는 1일 8면을 발행하다가 <경인일보>로 바뀌면서 12면으로 늘리고, 이어 1990년 1월부터 16면, 1995년 2월부터 20면, 2001년부터 24면으로 증면했다. 1997년 5월 전면 가로쓰기를 하였으며, 같은 해 7월 조간으로 전환했다. 1998년 7월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2년에는 태블릿 피시용 모바일앱을 출시했다.
개요
경기도 내에서 발행하던 〈연합신문〉이 〈경기매일신문〉·〈경기일보〉를 통합해 창간한 〈경기신문〉의 후신이다. 1982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같은 해 3월 1일 〈경인일보〉로 이름을 바꾸어 발행했다. 창간 때 발행인은 홍대건이었고, 사옥은 수원시 교동 136번지에 있었다. 1945년 창간한 <경기매일신문>의 호수(號數)를 계승하고 있다.
역사
1945년 10월 7일 인천에서 창간된 <대중일보>의 제호가 1960년 7월 7일 <경기매일신문>이라고 변경되었다. 한편 1966년 2월 22일 <경기일보>가 창간되었다. 이와 별도로 1960년 8월 15일 인천시 중구에서 <인천신문>이 창간되어 1968년 8월 15일 <경기연합일보>로 제호를 바꾸었고, 1969년 4월 28일 본사를 수원으로 이전했다. <경기연합일보>는 1970년 10월 1일 제호를 <연합신문>으로 변경하고, 1973년 9월 1일 <경기매일신문>과 <경기일보>를 합병한 후 <경기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변경했다.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1982년 3월 1일 명칭을 다시 <경인일보>로 변경했다. 신문의 호수(號數)는 <경기매일신문>을 계승하고 있다.
특징
"오직 불편부당의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을 만천하 독자에게 공약한다"는 슬로건 아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문, 각계각층의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가는 신문, 지역 경제발전과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는 신문이라고 발행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발행체제
처음에는 1일 8면을 발행하다가 〈경인일보〉로 바뀌면서 12면으로 늘리고, 이어 1990년 1월부터 16면, 1995년 2월부터 20면, 2001년 5월부터 24면으로 늘렸다. 1965년에 〈경기연감〉, 1983년에 〈인천연감〉·〈경인교육요람〉과 동화집으로 〈무지개와 아기 꽃사슴〉·〈도깨비 나라의 만세〉, 1984년에 〈내고장의 맥〉 등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1990년 7월 전면 전산조판(CTS)을 시작했으며, 1997년 5월 전면 가로쓰기를 했다. 같은 해 7월 조간으로 전환했으며, 1998년 7월에는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6년부터는 토요신문 <경인플러스> 23면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2007년 1월부터는 이를 32면으로 증면했다. 2010년에는 아이폰용 프로그램을 출시했고, 2011년 9월 방송추진단을 설치하고 방송스튜디오를 완공하여 보도의 채널을 다원화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독자의 요청에 따라 2012년 9월에는 태블릿과 아이패드용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현황
납입자본금은 114억 6,823만 원, 발행주식수는 114만 6,823주이다. 지역별 판매비율은 수원·인천 95.3%, 서울4.7%이다. 본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290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남동대로 773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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