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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20년 간도에서 일본인이 한국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 일제는 만주의 관동군에 조선에 있던 일본군까지 합류시킨 대부대를 간도 일대에 투입시켜 독립군을 소탕할 음모를 꾸몄다. 그 후 일제는 독립군 토벌을 빌미로 무고한 한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3·1운동 직후 만주에는 수많은 독립군 양성기관과 무장 독립군부대가 편성됐으며, 여러 번 국내로 잠입하여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일제는 1920년 10월 중국 마적을 사주해 간도의 일본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을 대거 만주로 출병시켰다. 독립군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산속 등으로 이동하자 일본군은 독립군의 근거지를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감행했다. 3~4개월에 걸쳐 수많은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재산과 식량을 약탈했으며, 한인들을 보는 대로 학살했다. 10월 9일에서 11월 5일까지 27일간, 간도 일대에서 현재 확인된 학살피해자만 해도 3,469명에 이른다.
3·1운동으로 표출된 독립국가건설의 민족적 열망은 일제의 무력에 굴하지 않고 만주에서의 독립군운동으로 이어졌다. 3·1운동 직후 만주에서는 수많은 독립군 양성기관이 형성되고 무장 독립군부대가 편성됐으며, 여러 번 국경을 넘어 국내로 진공하여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일제는 만주의 중국 군벌을 위협하여 공동으로 독립군 토벌작전을 감행했으나, 만주 거주 조선 민중의 저항과 중국 군대의 비협조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에 일제는 정규군 대부대를 만주에 직접 투입하여 일거에 독립군을 소탕할 음모를 꾸몄다.
1920년 10월 일제는 중국 마적을 사주해 간도 훈춘 현[琿春縣]의 일본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을 대거 만주로 출병시켰다. 독립군이 역량 보존을 위해 일본군의 만주출병과 때를 같이해 일본군의 추격이 미치지 않는 산속이나 중·소국경 지대로 이동함에 따라 일본군의 독립군 섬멸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일본군은 독립군의 근거지를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감행했다. 특히 독립군이 청산리와 봉오동전투에서 추격하던 일본군을 대파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무차별적인 한인학살작전을 전개했다.
3~4개월에 걸쳐 수많은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재산과 식량을 약탈했으며, 한인들을 보는 대로 학살했다. 옌지 현[延吉縣] 이란거우[依蘭溝]에서는 30여 호의 전주민을 몰살하고 마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10월 9일에서 11월 5일까지 27일간, 간도 일대에서 현재 확인된 학살피해자만 해도 3,469명에 이른다. 그외 확인되지 않은 숫자와 3~4개월에 걸쳐 학살된 수를 합하면 적어도 수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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