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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 도의 이름이 붙여졌다. 757년부터 윤곽이 생기기 시작하여 1314년 경상도로 개칭하여 이름을 유지하였다.
조선 전기에 경상도는 군현의 수, 인구 등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였으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1407년 낙동강을 기준으로 좌도, 우도로 나뉘었고 좌도에서는 안동, 경주가, 우도에서는 상주, 진주가 중심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대구가 성장하면서 행정중심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896년 경상도를 남북으로 분리,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누었다.
조선 초기까지 가장 큰 고을이었던 경주·상주·안동·진주 가운데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경상'이라는 도의 이름이 붙여졌다.
경상도의 윤곽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757년(경덕왕 16)에 상주(尙州)·양주(良州)·강주에 3도독부가 설치되어 인근 군현들을 관할하면서부터이다. 고려 995년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상주 관할을 영남도(嶺南道), 경주·금주 관할을 영동도(嶺東道), 진주·합주(陜州)관할을 산남도(山南道)라 하였다. 1106년(예종 1) 이 3개도를 합하여 경상진주도로 고쳤으며, 1171년(명종 1) 이를 경상주도와 진합주도(晉陜州道)로 분리하였다가 1186년 다시 합하여 경상주도라 하였다.
1204년(신종 7)에는 상진안동도, 그후에는 경상진안도·명주도 등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1314년(충숙왕 1) 경상도로 개칭하여 1896년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였다.
조선 전기에 66개 군현으로 구성되었던 경상도는 조선 전기에 진주로부터 남해현(南海縣)이, 김해로부터 웅천현(熊川縣)이, 1637년 경주로부터 자인현(慈仁縣)이, 1640년 성주의 속현이었던 팔거현(八莒縣)이 칠곡(漆谷)도호부로, 1683년 영해로부터 영양현(英陽縣)이 독립ㆍ신설되어 조선 후기에는 71개 군현을 관할하였다. 따라서 경상도는 8도 가운데 군현의 수, 인구 등의 측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였다. 또한 일본과 접촉하는 창구와 통로가 되었으므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1407년 이후 조선시대에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을 좌도(左道), 서쪽을 우도(右道)로 나누었다.
좌도에는 경주·안동·대구·풍기·용궁·인동 등 40개 군현이, 우도에는 상주·진주·성주·선산·문경·함창 등 31개 군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는 공식적으로는 분리와 통합을 거듭하였으나 실제 행정상이나 관습적으로는 좌도와 우도가 대체로 구분되어 있었다. 또한 좌도는 대체로 과거 진한 지역으로 신라의 전통이, 우도는 대체로 변한 지역으로 가야의 전통이 내려와 지역적인 특성도 구분되었다.
좌도에서는 북부의 안동, 남부의 경주가, 우도에서는 북부의 상주, 남부의 진주가 중심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경상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구의 성장으로 1601년(선조 34) 대구로 감영이 옮겨져 경상도의 행정중심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896년 13도제를 실시함에 따라 경상도를 남북으로 분리,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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