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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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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국보(1985.01.08 지정)

요약 국보(1985.01.08 지정).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처음에는 경복궁의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작은 규모로 지었던 것을 1412년 서쪽으로 옮겨 큰 연못을 파고 4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우면서 경회루로 이름지었다. 1429년 중수되었고, 1475년 고칠 때 48개의 석주에 구름 속 용을 조각해 조선 3대 장관의 하나로 알려졌다. 1592년 전부 불타버렸다가 1865년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짓기 시작해 1867년 완공되었다. 앞면 7칸, 옆면 5칸의 중층 건물이며, 팔작지붕인 이 건물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서 있다. 아래층은 외주방형과 내주원형으로 된 48개의 민흘림석주가 상층목조부분을 지탱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방전을 깔았고, 우물천장을 아름답게 단청했다. 경회루가 갖는 건축적 특징은 평면구조·칸수·기둥수·부재길이 및 창의 수 등에 〈주역〉의 이론을 적용해 신선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국보(1985.01.08 지정).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이다.

경회루(국보 제224호)

경회루,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누각(1867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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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경복궁의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작은 규모로 지었던 것을 1412년(태종 12)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해 서쪽으로 옮겨 큰 연못을 파고 4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웠다. 이때 경회루로 이름지었고,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을 만들었다. 1429년(세종 11) 중수되었고, 1475년(성종 6) 다시 고칠 때 48개의 석주에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을 조각해 조선 3대 장관의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연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었다. 1592년(선조 25) 한양의 백성들에 의해 전부 불타버렸다가 1865년(고종 2)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짓기 시작해 1867년 완공되었다. 앞면 7칸, 옆면 5칸의 중층(重層) 건물로 익공계 양식이며, 팔작지붕인 이 건물은 장대석으로 축조된 기단 위에 서 있다. 아래층은 외주방형과 내주원형으로 된 48개의 민흘림석주가 상층목조부분을 지탱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방전을 깔았고, 우물천장을 아름답게 단청했다.

경회루가 갖는 건축적 특징은 평면구조·칸수·기둥수·부재길이 및 창의 수 등에 〈주역〉의 이론을 적용해 신선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1865년 정학순이 쓴 〈경회루서〉에 건물의 세부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경회루는 기능의 완전성과 독립주에 의한 아름다운 비례의 건축미를 자랑하며, 더욱이 주변 산봉과 서로 어울려 연못에 반영된 절묘한 경관은 누각 건축의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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