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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79. 11. 3, 아일랜드 리머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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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69. 3. 2, 더블린 근처 세인트헬렌스 |
국적 | 영국 |
요약
이베리아 반도 전쟁과 인도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영국의 군인.
Baron Gough(1846~49), 1st Viscount Gough(1849~)라고도 함.
영국에서 웰링턴 공작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전투를 지휘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리머릭 시민군의 중령이었던 그는 13세 때 영국 육군 입대허가를 받았다. 1796년 영국군의 희망봉 점령작전에 참여했고, 1797~1800년에는 서인도 제도에서 싸웠다. 25세 때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아 소령이 되었으며 반도전쟁(1808~14)이 일어나자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아일랜드 퓨질리어 연대를 지휘했다.
스페인의 탈라베라에서는 중상을 입고도(1809) 바로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1811), 타리파를 지키는 데 이바지했다. 비토리아에서 프랑스 원수인 장 바티스트 주르당의 지휘봉을 빼앗았다(1813).
1815년에 기사 작위와 연금을 받았으며, 그후 20년 동안은 아일랜드 남부지방의 농민들과 전투(1821~24)를 잠깐 벌였을 뿐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1837년에는 소장으로 진급하여 인도 마이소르 주둔부대의 사령관이 되었고, 제1차 아편전쟁(1839~42) 때는 중국원정대를 지휘했다. 1843년 인도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그해에 마라타 군을 무찔렀으며, 1845~46년과 1848~49년의 시크 전쟁에서 시크교도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시크교도들과의 전쟁에서 의외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결과 그의 전술은 비판을 받았고, 그를 대신하여 찰스 네이피어 경이 인도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제1차 시크 전쟁이 끝난 뒤 남작 작위를 받았고(1849), 제2차 시크 전쟁 뒤에는 자작으로 지위가 높아졌다(1849). 상원과 하원이 애써준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1855년 영국 근위기병대장에 임명되었고, 1862년 육군 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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