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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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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임진왜란이 발발되기 전해인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왜구의 내침을 미리 대비하여 특수전투함인 거북선의 건조에 착수했다. 거북선의 크기는 판옥선의 크기와 같다. 뱃머리에 용두를 설치하여 용의 아가리를 통해 대포를 쏘았다. 거북의 등처럼 만든 귀배판에는 철첨을 꽂아 적병이 배 위로 오르는 것을 막았다. 포혈은 좌우 각 현에 6개, 용두에 1개, 선미에 1개가 있었으며, 천자포·지자포·현자포·황자포 등의 각종 총통을 장비했다. 철로 덮어 많은 적선 속으로 뚫고 들어가도 적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었다. 1592년의 거북선 수는 3척이었다. 승무원수는 125~130명 정도였다. 돛대는 세우고 눕힐 수 있어서 접전시에는 돛대의 장비를 보호하고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돛대를 눕히고 노만으로 추진했다.

거북선

거북선,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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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발발되기 바로 전해인 1591년(선조 24) 2월 13일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왜구의 내침을 미리 염려하여 본영을 비롯한 수군의 각 진(鎭)에 대해 전쟁준비를 급속히 강화하는 한편, 특수전투함인 거북선의 건조에 착수하였다. 특히 조선기술(造船技術)에 뛰어난 막하의 군관 나대용(羅大用)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은 임진년 6월 14일에 써올린 〈당포파왜병장 唐浦破倭兵狀〉에서 거북선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신이 일찍부터 섬 오랑캐가 침노할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귀선을 만들었습니다[別制龜船]. 앞에 용두를 설치하여 아가리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꼬챙이를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엿볼 수 없게 해서, 비록 적선 수백 척이 있다 하더라도 그속으로 돌입하여 대포를 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번 싸움에 돌격장(突擊將)으로 하여금 이 귀선을 타고 적선 속으로 먼저 달려들어가 천자포(天字砲)·지자포(地字砲)·현자포(玄字砲)·황자포(黃字砲) 등의 각종 총통(銃筒)을 쏘게 했습니다."

이순신 거북선의 구조 및 제도에 대한 기술적 자료는 보전·전승되지 않았으나, 정랑 이분(李芬)이 쓴 〈이순신행록(李舜臣行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정확한 구조와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판옥선 위에 지붕을 덮고, 그 위에 창을 꽂아 적이 함부로 올라올 수 없게 했다. 양쪽에 대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이 있고, 앞에는 용 머리를 달고 뒤에는 거북 고리를 달았으며, 용 머리에도 총구멍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연기를 뿜어 공포감을 주거나 연막 효과를 주었다. 배 좌우에 노를 저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2층 구조인지 3층 구조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분(李芬) <이순신행록(李舜臣行錄)>

"그리고 또 전선을 창작하니[創作戰船] 크기는 판옥선만한데[大如板屋], 위에는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 십자(十字) 모양의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칼송곳을 꽂아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도록 했으며,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어 입은 총혈(銃穴)이 되게 하고, 뒤는 거북꼬리처럼 되었는데 그 밑에도 총혈이 있으며, 좌우에 각각 6개의 총혈이 있다. 대개 그 모양이 거북의 형상과 같아 이름을 '귀선'이라 하였다. 뒷날 싸울 때에는 거적[編茅]으로 송곳[錐刀] 위를 덮고 선봉이 되어 나가는데, 적이 배에 올라와 덤벼 들다가는 칼송곳 끝에 찔려 죽고, 또 적선이 포위하려 하면 좌우 앞뒤에서 일제히 총을 쏘아 적선이 아무리 바다를 덮어 구름같이 모여들어도 이 배는 그 속을 마음대로 드나들어 가는 곳마다 쓰러지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에 전후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것으로 항상 승리를 거두었다."

위에 인용한 이순신의 장계 내용 및 이분의〈이순신행록〉, 그리고 일본측의 당시 기록인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 경상좌수사 이언섭(李彦燮)의 장계내용(1748, 영조 24) 등의 현존 사료(史料)로부터 이 거북선의 구성과 주요기능에 관계되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거북선의 크기 : 판옥선(板屋船)의 크기와 같다.

②용두 : 뱃머리에 용두(龍頭)를 설치하여 용의 아가리를 통하여 대포를 쏘았다.

또 사각(射角)의 조정이 가능하였다[仰放玄字……].

③철첨 : 거북의 등처럼 만든 귀배판(龜背板)에는 철첨(鐵尖:쇠송곳)을 꽂아 적병이 배 위로 오르는 것을 막았다.

④포의 수 : 포혈(砲穴)은 좌우 각 현(舷)에 6개, 용두에 1개, 선미(船尾)에 1개가 있어, 모두 14문이 사용되었다.

⑤포의 종류 : 천자포·지자포·현자포·황자포 등의 각종 총통을 장비했으며, 실전에서는 탄환 이외에도 대전(大箭:큰화살)을 많이 발사하였다.

⑥철갑 : 철로 덮어 많은 적선 속으로 뚫고 들어가도 적의 공격, 특히 화공(火攻)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일본측의 실전기록인 〈고려선전기〉는 안골포해전 대목에서 "큰 배 중의 3척은 맹선(盲船:장님배. 거북선에 대한 일본측의 별명)이며, 철로 덮여 있고……"라고 쓰고 있다. 경상좌수사 이언섭의 장계는 "이른바 거북선은 누각을 만들지 않고, 판으로써 덮개를 하고 그 위에 거듭 인갑(鱗甲)을 하였고……"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갑이란 철엽(鐵葉)을 비늘 모양으로 연결하여 만든 갑옷을 지칭하는 것이다.

⑦척수(隻數) : 〈고려선전기〉에 따르면 1592년의 거북선 수는 3척이었다.

그러나 1595년에는 명(明)에 "수군통제사 이순신은……전선 60척, 귀선 5척, 초탐선 65척을 거느리고……"(事大文軌 권12)라고 통보하고 있으므로 1595년의 거북선수는 모두 5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⑧정원 : 거북선의 승무원수는 당시의 판옥선에 준하여 125~130명 정도였다.

⑨돛대 : 돛대는 세우고 눕히기를 임의로 할 수 있어서 접전시에는 돛대의 장비를 보호하고 기동성을 높이기 위하여 돛대를 눕히고, 노(櫓)만으로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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