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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7(고종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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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0. 11 |
국적 | 한국 |
요약 일제시대의 형평운동가.
1920년대 형평운동에 적극 참여해, 민족해방운동보다는 신분해방문제에 형평운동의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강재순이다.
천석꾼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1910년 진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2년 3월에 진주공립실업학교를 마쳤다. 한때 일본인이 세운 경남진흥측량학교에서 측량법을 배우기도 했다. 진주에 봉양보통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전개하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진주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대구교도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23년 4월 진주 청년회관에서 열린 형평사 발기회에서 초대 사장으로 뽑히면서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운동에 투신했다. 그뒤 형평운동의 노선을 둘러싸고 혁신파(북파)와 보수파(남파)가 분열하자, 보수파를 이끌면서 형평운동이 민족해방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에 흡수되기보다는 신분해방운동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형평사를 해소하고 도부노동조합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장지필과 오성환 등의 급진파에 맞서 대동사로 이름을 바꿀 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6·25전쟁 때 진주시 인민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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