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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도의 마이소르 주(강가바디)를 다스린 서(西)강가 왕조(250~1004경)와 칼링가 지역을 다스린 동(東)강가 왕조(1028~1434/35).
이 두 왕조는 서로 별개로 관계가 멀다.
서(西)강가 왕조의 첫번째 왕인 콩가니바르만은 정복을 통해 왕국을 건설했지만, 후계자인 마다바 1세와 하리바르만은 팔라바·찰루키아·카담바 왕조와 결혼 및 군사동맹을 맺어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8세기말에 왕조의 분열로 세력이 약해졌으나 부투가 2세(937경~960)는 수도인 탈라카드에서 바타피에 이르는 툰가바드라와 크리슈나 강 사이의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계속되는 촐라의 침공은 강가바디와 제국의 수도 사이의 접촉을 끊어 탈라카드는 1004년경 촐라 왕조의 비슈누바르다나에게 점령되었다.
서강가인들은 대부분 자이나교를 신봉했지만, 브라만 힌두교도들도 약간 있었다. 그들은 칸나다(또는 Kanarese)에서 학문을 장려하고 웅장한 사원을 지었으며, 산림벌채, 관개시설을 건설하고 반도를 가로지르는 무역로를 개설했다.
동(東)강가 왕조는 서강가 왕조의 세력이 약해졌을 때 촐라와 찰루키아에 도전하는 등 결혼동맹을 맺을 정도로 성장했다. 동강가의 초기 왕조는 8세기부터 오리사를 지배했으나, 트리칼링가디파트(Trikaliṅgādhipat : 3개의 칼링가를 통치하는 자)라는 칭호를 얻은 바즈라하스타 3세가 1028년 처음으로 칼링가의 3지역을 모두 다스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의 아들 라자라자 1세는 촐라·동찰루키아와 전쟁을 일으켰고 촐라의 공주인 라자순다리와 결혼하여 왕조를 강화시켰다.
그들의 아들 아난타바르만 초다강가데바는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의 북치르차르스를 합병하고, 북쪽으로 갠지스 강 어귀에서 남쪽으로 고다바리 강 어귀까지 통치했으며 11세기말에는 푸리에 자간나타 대사원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1198년 즉위한 라자라자 3세는 1206년 오리사를 침범한 벵골의 이슬람교도들을 방치했으나 라자라자의 아들 아낭가비마 3세는 이슬람교도들을 쫓아내고 하이하야스 남부에서 전쟁을 일으켰으며 부바네슈바라에 메게슈바라 사원을 세웠다. 1243년 그의 아들 나라싱하 1세는 벵골 남부를 침공하여 이슬람 통치자들을 물리쳐 수도인 가우다를 함락시켰으며 그 기념으로 코나라크에 '태양 사원'을 세웠다. 1264년 나라싱하가 죽으면서 동강가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1324년 델리의 술탄이 오리사를 침공했고, 1353년 이슬람교도가 습격했으며 1356년에는 비자야나가르가 오리사 군대를 격파했다.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동강가의 마지막 왕 나라싱하 4세는 1425년까지 통치했다. 그의 계승자로 '광인왕'이라고 불렸던 바누데바 4세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신하였던 카필렌드라가 왕권을 찬탈하여 수리아방샤 왕조를 세웠다. 1434~35년 동강가는 종교와 예술을 장려했으며 당대의 사원은 힌두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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