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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0. 1. 4, 중국 장시 성[江西省] 간저우[&c568B;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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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중국/프랑스 |
요약 200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태생의 프랑스 소설가·극작가·평론가. 문화대혁명과 톈안먼 사건 등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헤쳐오면서 소설과 희곡을 통해 일관되게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옹호하며 사회주의의 규율에 도전했다.
가오싱젠은 은행 간부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환경 덕분에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룰 수 있었고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훗날 그가 소설가로, 극작가로, 비평가로, 또 화가로 전방위적 예술 활동을 펼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이와 같은 유년기의 문화적 배경이 깔려 있다.
베이징[北京] 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1960년대 이후의 청년기는 그의 문학의 토대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새뮤얼 베케트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외젠 이오네스코 등을 통해 유럽의 아방가르드 문학과 부조리극(不條理劇)을 접한 그는 베케트와 이오네스코의 작품들을 손수 번역해 중국에 소개하는 한편, 1975년부터는 문예지 〈중국 재건 中國再建〉의 프랑스 문학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희곡과 소설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문학적 주제라 할 수 있는 '부조리'의 개념을 정립해 나갔다. 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공산당의 공포정치와 테러에서 부조리의 근원을 읽어내고 연극적 요소를 통해 이를 제시하고 천착하는 것을 자신의 문학의 본령으로 삼았다.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그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다. 당국의 지식인 하방(下放)정책에 따라 시골로 강제 전출된 데다 아내에게서 버림받는 아픔까지 겹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써온 많은 원고를 불태워야 했던 기억은 "스스로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과 같은 쓰라린 고통"으로 남았다.
그는 은밀하게 글쓰기를 계속했고 1979년 마침내 작품 출판과 외국 여행의 자유를 얻었다.
1980~87년 그는 단편소설·평론·희곡을 왕성하게 집필하는 한편 문학논쟁의 중심에 섰다.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에 도전한 평론 〈현대소설기교초탐 現代小說技巧初探〉(1981)으로 격렬한 논쟁과 당국의 집중 감시를 촉발했으며 브레히트와 베케트, 앙토냉 아르토에게서 영감을 얻은 실험적인 희곡 〈절대신호 絶對信號〉(1982)를 베이징 인민예술극장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에 그 여세를 몰아 희곡 〈버스 정류장 車站〉(1983)을 무대에 올려 부조리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나 그와 동시에 '서양문학과 공모한 정신적인 공해'라는 당국의 비판에 직면했다.
이어 소설 〈야인 野人〉(1985)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1986년에는 희곡 〈피안 彼岸〉의 상연이 금지되었다. 그는〈현대희곡이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對一種現代戱劇的追求〉(1987)를 통해 이러한 표현의 부자유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같은 해에 프랑스 망명을 결행한 데 이어 톈안먼 사건 뒤에는 중국공산당을 탈당했다.
내면으로의 순례이면서 동시에 현실과 허구, 기억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반성적 여정의 기록으로 평가되는 그의 자전적 소설 〈영산 靈山〉(1982)과 내면세계를 더욱 깊이 탐색한 〈한 사람의 성경 一個人的聖經〉(1999), 희곡 〈버스 정류장〉 등의 작품은 이미 여러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곳곳에서 상연되고 있다.
30여 차례 국제적인 전시회를 가진 화가답게 자신의 작품집 표지를 손수 그리는 이 초로의 중국계 망명작가에게 프랑스 정부는 8년 전 문화예술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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