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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후기에 등장한 중인서리층을 중심으로 한 가객 동호인 모임.
조선 전기 사대부들의 시조를 논하면서 영남가단·호남가단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고, 대개 가단이라 할 때는 조선 후기 중인서리층을 중심으로 한 가객집단을 뜻한다.
조선 후기에는 많은 중인층들이 문학활동을 전개했는데, 가단은 중인 출신으로 한시를 쓰는 사람들이 만든 시사(詩社)에 대응된다. 이들은 도시의 발달로 예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도시의 유흥과 풍류를 주도했다.
18세기 전반 김천택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아직 본격적인 가단이 없었던 듯하다. 다만 김천택이 〈청구영언〉에서 자신을 포함하여 장현·주의식·김삼현·어은·김유기 등을 여항6인(閭巷六人)이라고 묶은 것으로 보아 이들 사이에는 동질성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논자에 따라서는 이들을 경정산가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격적인 가단활동은 18세기 중반부터인데, 이때는 이세춘가단이 활동했다.
노가재란 호를 가진 김수장을 중심으로 모인 노가재가단은 가창뿐 아니라 가집편찬과 창작활동에 힘썼고, 이세춘가단은 가창에만 힘썼다. 가창은 19세기에 와서 더욱 성행한 듯하나 가단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어 그 양상을 알기 어렵다. 19세기 후반 박효관·안민영이 중심이 된 승평계(昇平契)·노인계(老人契)가 등장해 시조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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