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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찰리 챈이라는 이름이 낯설지만 해외에서는 셜록 홈즈만큼이나 빈번하게 언급되는 이름이다. 적어도 추리소설 애호가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홈즈 다음으로 익숙한 탐정이라고 할 만하다. 어쩌면 서양인의 시각에서 이 이름은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찰리 챈은 하와이 호놀룰루 경찰청 소속 형사로, 작고 뚱뚱하고 예의 바르며 매우 겸손한 중국인으로 묘사된다. 펀치볼 힐의 방갈로에서 11명의 자녀와 살며 항상 중국 속담을 인용하는 그는 태생적으로 서구인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이 강하게 반영된 인물이다. 특히 첫 작품 ≪열쇠 없는 집≫에서는 탐정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의 공손함은 어쩌면 사회적 약자로서 필연적인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린 시절 하와이 최고의 재벌 저택에서 사환으로 일했고 경찰에 들어가 노력한 끝에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므로 그러한 태도가 몸에 밴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러나 명탐정으로서는 흔치 않은 이런 모습이 찰리 챈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찰리 챈은 느릿느릿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한다.

그리고 늘 중국 속담을 인용하며 느긋하게 주변 인물들을 살펴본다. 언제나 동양인의 지혜라는 것을 강조하는 강한 오리엔탈리즘 시선 때문에 동양인에게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미국 본토 문화를 동경하여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며, 난생처음 미국에 건너가서는 눈이 휘둥그레져 대도시를 구경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 역시 동양 독자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는 인격적으로 완벽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것은 1960년대 흑인 형사 버질 티브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면으로, 인종차별이 심한 당시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 주인공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한 작가의 안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커튼 뒤의 비밀≫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무능한 플래너리 반장의 비위를 맞추는 동시에 은근히 비아냥거리면서 자신의 뜻대로 사건을 통제하는 등 단순한 무골호인은 아니다.

이 시리즈는 대개 화려했던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년 세대와, 변화와 모험을 추구하는 불안정한 젊은 세대를 동시에 보여 주며 찬란한 줄 알았던 과거가 실은 피와 탐욕으로 얼룩진 수치스러운 기억이었음을 파헤친다. 그러나 어두운 분위기보다는 낭만적인 모험담의 성격이 짙다. 이는 주로 턱없이 낙천적인 젊은이가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어 늘 사랑 이야기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시리즈는 로맨스 모험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젊은 주인공은 일상의 따분함을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스릴 넘치는 일탈을 경험하며 흥분과 경이를 맛본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찰리 챈이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하며 그를 보호한다. 3편에 이르러서야 찰리 챈이 중심이 되어 명탐정다운 활약을 펼친다.

탐정으로서의 찰리 챈은 대단한 천재형은 아니다. 처음부터 무언가 알았다는 태도를 취하며 다른 사람을 약 올리지도 않는다. 때때로 실수도 저지르고 혼란에 빠지기도 하면서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차근차근 단서를 쌓아간다. 인내심을 강조하는 입버릇처럼 사건 규명도 완만한 편이고,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찾아내지 못해도 여러 난관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며 끝내는 진실을 밝혀낸다. 이러한 인간적인 명탐정으로서의 면모 역시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게다가 형사답게 ≪중국 앵무새≫에서는 민첩한 총 솜씨로 악당을 쓰러뜨리기도 한다.

당시의 독자들은 혈기왕성한 청년의 입장에 서서 하와이와 미국 각지를 오가며 펼쳐지는 모험과 교묘한 플롯을 즐겼다. 그러면서 자연히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예리하고 기민한 찰리 챈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찰리 챈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두어 라디오와 영화, 만화 등으로 재생산되었다. 특히 영화는 50편 가까이 만들어지면서 찰리 챈 자체가 프랜차이즈화되어 추리물의 영역을 벗어나 범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작가 얼 데어 비거스(Earl Derr Biggers)는 1884년생으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 트래블러≫에서 칼럼과 비평을 쓰다가 신문사가 망한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19년 하와이 방문 때 현지 신문에 실린 중국인 형사 창 아파나(Chang Apana)의 기사를 접하고 찰리 챈을 구상했다. 찰리 챈 시리즈는 6편밖에 없으나 비거스가 사망한 후에도 다른 작가에 의해 시리즈는 계속 이어졌다. 50년까지 계속된 시리즈의 막판에는 찰리 챈이 70세에 가까운 노년에 이르러 수많은 자손들과 함께 하와이에 거주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비슷한 길을 걸은 다른 탐정 시리즈와 달리 찰리 챈 시리즈는 보통 비거스가 집필한 여섯 작품에서만 거론된다.

서양에서 사랑받는 동양인 영웅의 시조인 찰리 챈은 이미 서구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은 다른 탐정 캐릭터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다. 그는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즐겁게 한 까닭에 그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