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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과 SF의 장르 융합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그래도 이 두 장르를 가로지르는 거장이라고 하면 역시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와 함께 SF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데 그치지 않고 추리소설에서도 흑거미 클럽 시리즈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SF에서 가장 유명한 시리즈인 ‘로봇 시리즈’는 SF 대작으로서 많은 함의와 상징을 담고 있는 대서사시이지만 한편으로는 추리소설과 SF 장르를 가장 잘 접목시킨 예로 꼽힌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지구의 형사 일라이저 베일리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후 먼 미래의 지구는 우주 이주민들(Spacer)이 떠나 우주 국가 연합을 형성한 뒤 남은 이들이 거대한 돔 속에 밀집하여 살고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이다. 파이프 담배를 즐기는 43세의 C-5급 형사 일라이저 베일리는 로봇에 대한 반감이 강하고 광장 공포증이 있는 전형적인 지구인이다. 햇빛에 익숙하지 않아 자주 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투철한 사명감과 강한 정의감, 뛰어난 추리력의 소유자로 우주 이주민 관련 살인사건을 해결하면서 우주 국가 연합과 지구를 연결하는 중요 인물이 된다.

그는 ≪강철 도시≫에서 우주 국가 연합이 파견한 형사 R. 다닐 올리보(R. Daneel Olivaw)와 파트너가 되어 수사한다. 올리보는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이고 베일리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지만 결국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둘이 함께 수사를 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버디물을 연상시킨다. 즉, 보수적인 백인 중년 남성이 이성적이고 유능한 소수 민족 젊은이와 콤비를 이루어 티격태격하다 결국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추리물이었으나 나중에는 인류의 방대한 서사시가 된다. 구약성경의 선지자 엘리야의 이름을 딴 일라이저 베일리는 지구와 우주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통찰력으로 올리보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베일리의 사후 올리보는 장구한 시간 동안 역사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베일리의 아들 벤틀리는 지구의 우주 개척민의 지도자로서 활약한다. 일라이저 베일리는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도 전설처럼 기억된다. 그는 ‘여호사밧’(Jehoshaphat: 구약 열왕기에 나오는 유대 왕)이라는 감탄사를 버릇처럼 내뱉는데 그의 유족은 사람들에게 이 말버릇은 베일리만의 전유물이라고 당부한다.

일라이저라는 이름(아내 이름은 제제벨로 역시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다)에서도 알 수 있듯 베일리는 인류의 선지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균적인 지구인을 대표하며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을 잃지 않는다. 또한 그는 훌륭한 탐정이다. 그는 완벽한 능력을 갖춘 올리보조차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관찰력과 직관으로 해결하는 탐정으로 명탐정의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