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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 청각적인 요소의 총체. 영상은 먼저 그림으로 표현되는 부분, 즉 이미지가 한 부분을 이루고 오디오로 표현되는 부분 즉 사운드가 한 부분을 이룬다. 영화에서 사운드는 대사와 음악, 효과 음향, 자연음 등이 주된 요소이다. 음향과 이미지를 동기화(synchronize)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영화와 더불어 시작됐다.
1926년 8월에 뉴욕의 워너 브러더스는 앨런 크로스랜드(Alan Crosland)가 감독하고 존 배리모어(John Barrymore)가 주연한 영화 〈돈 주앙〉(Don Juan)을 선보였는데, 음악은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담당했고 디스크식 발성 영화기인 바이타폰(vitaphone) 시스템이 사용됐다. 앨런 크로스랜드 감독, 알 졸슨(Al Jolson) 주연의 〈재즈 싱어〉(The Jazz Singer, 1927)는 산업으로서 유성 영화의 극적인 팽창을 가져오게 한 계기가 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전편에 걸쳐 음악이 나오고 대사는 대부분 자막으로 처리되었지만, 몇 장면은 직접 목소리로도 들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영화는 좀 더 현실 세계에 근접할 수 있었다. 1928년, 워너 브러더스사는 최초로 본격적인 유성 영화인 〈뉴욕의 불빛〉(Lights of New York)을 선보였다. 이처럼 유성 영화로의 전환은 순식간에 그리고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전체 영화관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만 3천 개 극장이 음향을 전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무성 영화를 제작하는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했다. 유성 영화 시대의 개막으로 영화 산업은 급속히 변화했는데, 무성 영화 시대 스타들 가운데는 목소리가 영화 이미지에 맞지 않아 도태되는 경우도 흔했다. 대사 전달에 유능하고 목소리가 좋은 연극배우, 대사를 잘 사용하는 작가, 브로드웨이 드라마 등이 크게 환영받았다.
할리우드는 유성 영화 초창기 시절 틀에 박힌 영화를 무수히 만들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기술적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다. 당시 스튜디오에는 사운드를 다루는 새로운 기술자와 고정 마이크가 있었는데, 이 마이크는 불필요한 소리까지 모두 기록했다. 이 소음에 대한 대책으로 카메라를 방음 유리벽 너머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와 부스를 옮기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다양한 쇼트를 보여 주기 위해선 서너 대의 카메라와 부스가 필요했으나 이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영화들은 둔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초창기의 기술적인 한계는 곧 극복됐다. 1929년 〈갈채〉(Applause)는 한 장면에 두 개의 마이크를 사용해 믹스한 최초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몇 개 장면을 촬영하여 나중에 음향을 첨가했다. 1929년에 나온 킹 비더(King Vidor)의 영화 〈할렐루야〉(Hallelujah)와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의 〈러브 퍼레이드〉(The Love Parade, 1929) 그리고 루이스 마일스톤(Lewis Milestone)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930)는 모두 나중에 더빙 음향을 사용한 영화들이다. 야외 음향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는 1928년 라울 월시(Raoul Walsh)와 어빙 커밍스(Irving Cummings) 감독의 〈아리조나〉(In Old Arizona)이다.
유성 영화 시대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신체 동작과 무언의 연기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영화의 선구자들은 급속히 사라져 버렸다. 또 D. W. 그리피스(D. W. Griffith)를 통해 정점에 도달했던 멜로드라마는 더 이상 음향의 리얼리즘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잃어버린 대신에 얻은 것도 있는데 그것은 언어를 통해 주제를 관객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는 막스 형제(Marx Brothers)와 W. C. 필즈(W. C. Fields)이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코미디, 특히 〈낙원에서의 곤경〉(Trouble in Paradise, 1932)이나 〈길모퉁이 가게〉(The Shop Around the Corner, 1940) 같은 영화는 대사와 음향을 사용하여 놀라운 디테일을 보여 줬다.
무성 영화 시대에 특유의 영상미가 있었다면 유성 영화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를 그렸고 영화를 통해 인간 경험의 깊이를 펼칠 수 있었다. 1940년에 디즈니가 〈판타지아〉(Fantasia)를 통해 입체 음향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1950년까지 음향 기술의 획기적인 진보는 없었다. 50년 이후 와이드 스크린에 마그네틱 트랙(magnetic track)과 복수 스피커가 도입됐고 1952년에는 시네라마(Cinerama), 1953년에는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가 도입됐다. 그 이후 이루어진 발전은 돌비 시스템(Dolby system)이다. 1983년에는 루카스 필름이 새롭게 THX 시스템을 선보였으며 보다 나은 음질을 향한 연구 결과 디지털 음향(digital sound)이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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