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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20세기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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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20세기 음악>기악곡 |
제작시기 | 1938년 |
작곡가 | 프란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 1899~1963) |
초연 | 1939년 모리스 뒤뤼플레 오르간, 나디아 불랑제 지휘 (비공개 초연), 1939년 파리 (공개초연) |
출판 | 1939년 |
헌정 | 에드몽드 드 폴리냐크 공주(Princess Edmond de Polignac) |
편성 | 오르간(협주), 팀파니, 현악기, 오케스트라 |
요약 이 곡은 1938년 작곡되었다. 에드몽드 드 폴리냐크 공주의 위촉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1939년 전설적인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 모리스 뒤뤼플레(Maurice Duruflé)의 오르간 연주와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의 지휘로 공주의 살롱에서 비공개로 초연되었고, 같은 해 파리에서 공개 초연되었다.
웃음기를 거두고 가톨릭으로 귀의한 풀랑크
풀랑크가 1938년 〈오르간 협주곡〉을 작곡할 즈음, 그의 음악에서 위트는 사라졌다. 그의 세계관은 유럽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어두워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바로 이듬해에 발발했고, 세계정세는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다. 이 시기 그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는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서 많은 종교 작품들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시기 그는 종교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정적으로 그가 종교에 귀의하게 된 계기는 1936년,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작곡가, 평론가였던 피에르-옥타브 페로(Pierre-Octave Ferroud)의 죽음 때문이었다. 친구가 죽은 이후 풀랑크는 성지순례를 떠났고, 이 경험은 〈8개의 샹송〉(1936)과 〈미사 G장조〉(1937)에서 이미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오르간 협주곡〉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오르간 협주곡〉에서 풀랑크는 마치 과거의 음악세계로 돌아가는 듯하며 놀랍도록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프랑스 오르간의 장대한 사운드
풀랑크의 〈오르간 협주곡〉은 고딕성당에서 울리는 바흐의 오르간 음악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오르간의 솔로 패시지로 시작한 뒤 알레그로 지오코소각주1) (giocoso)가 이어지면서 장난기 많았던 풀랑크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듯하다. 음악은 이어 서정적인 느린 섹션으로 이어진다. 라멘토소각주2) (lamentoso)의 선율은 풀랑크의 초기 실내악 곡들에서도 자주 등장했지만 초기 그의 작품에서는 약간은 풍자적이고 조소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면 〈오르간 협주곡〉에서 그런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곡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느린 부분과 빠른 부분이 계속 교대로 이어진다. 마치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환상곡〉의 정신으로 쓰인 듯, 이 곡을 이루는 일곱 개의 섹션들은 중간 휴지 없이 계속된다. 스트라빈스키 풍의 오스티나토가 이어진 다음, 마지막에는 오르간과 팀파니, 기쁨에 넘치는 비올라 솔로가 멋진 음향을 연출하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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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오르간 협주곡 g단조 – 클래식 백과, 이보경 외,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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