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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4년 3월 28일 중국 장쑤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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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왕우(王羽) |
데뷔 | <호협섬구>(虎俠殲仇, 1966) |
요약 왕우는 홍콩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이다. 9살 때부터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쇼브라더스에서 경력을 시작하여 액션배우로 주목받았다. 장철 감독의 최고 흥행작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1967)로 스타덤에 오르며 ‘천황거성(天皇巨星)’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쇼브라더스를 나와서 감독으로 네 편의 영화를 연출하였다. 90년대 중반에 영화계를 떠났다가 20년의 휴지기를 거친 다음 일흔의 나이에 다시 배우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작으로 <독비권왕 대파혈적자>(獨臂拳王大破血滴子, 1976), <소오강호>(笑傲江湖, 1978)가 있다.
생애와 이력
홍콩의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 무술감독, 각본가, 영화 기획자. 1944년 중국 장쑤성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을 따라 상하이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학교에 입학하였다. 아홉 살 때부터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한 그는 모든 체육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특히 수영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7세에 홍콩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수영, 승마, 카레이싱 등의 스포츠 부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홍콩 수영 챔피언에 세 번이나 등극했다. 하지만 그가 참가했던 한 수구경기에서 싸움에 연루되어 수영계에서 추방되고 만다.
1963년 스무 살의 왕우는 우연한 계기로 쇼브라더스(Shaw Brothers)에 입사하여 그곳에서 배우 수업을 받게 되었다. 이미 수영이나 말 타기, 카레이싱 등 액션배우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기본 요소에서 갖추었던 덕분에 쇼브라더스에서 기회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시 신인이었던 장철(張徹) 감독을 만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1966년에 왕우는 장철과 두 편의 영화, <호협섬구>(虎俠殲仇, 1966)와 <변방삼협>(邊坊三俠, 1966)을 찍었다.
작품세계
<호협섬구>는 왕우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으로 70년대를 무협영화의 절정기로 장식한 장철과 왕우 황금 콤비가 탄생되었다. 왕우는 이 영화의 배역 오디션에서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어냈다. 그리고 곧 그는 홍콩의 영화산업계에 액션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알리게 되었다.
왕우와 장철 감독이 최상의 파트너십을 발휘한 영화는 왕우의 세 번째 출연작이자 첫 번째 주연작이었던 그 유명한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1967)였다. 홍콩영화 사상 최초로 관객 백만 명을 동원한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왕우와 장철 감독의 대표작이면서 홍콩무협영화 역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된다. 왕우는 그 이전까지의 용맹하고 영웅적인 남성배우의 느낌과는 다르게, 기이하고 퇴폐적이며 불안정한 느낌을 가진 새로운 느낌의 캐릭터를 표현해냈다. 말하자면 그는 매우 현실적인 판본의 영웅이었다. 관객들은 끊임없이 시련과 학대를 당하고 급기야 한 쪽 팔이 잘린 채로 복수를 위해 무공을 연마하는 외팔이를 연기하는 왕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대 홍콩인들 사이에서 왕우는 ‘천황거성(天皇巨星)’으로 불렸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모았고 한국에서도 극장에서 개봉되어 많은 마니아들을 거느렸다.
이후에도 장철과 왕우는 <대자객>(大刺客, 1967), <단장의 검>(斷腸劍, 1967), <심야의 결투>(金燕子, 1968), <돌아온 사나이 외팔이>(獨臂刀王, 1969) 등의 영화를 통해 계속해서 멋진 호흡을 보여주지만 이 강렬했던 파트너십은 오래 가지 못한다. 워낙 엄격한 스튜디오 시스템의 작업 방식에 불만이 생긴 왕우는 자신이 연출을 할 수 있기를 원했지만 스튜디오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믿었던 장철 감독 역시 자신의 연출 의지에 대해 우려와 반대를 표명하자 왕우는 쇼브라더스와의 계약을 무단으로 파기하기에 이른다.
1970년에 왕우는 연출 데뷔작 <용호의 결투>(龍虎鬪)를 발표하였다. <용호의 결투>는 아시아 최초의 본격 권법(맨손무술) 영화로 한국의 남한산성에서 촬영한 작품이었다. 영화는 업계 사람들의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고, 이후 배우들이 감독을 겸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쇼브라더스는 왕우에게 계약 위반을 들어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였고 급기야 홍콩에서는 영화 연출도, 출연도 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왕우는 대만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계속해서 영화 연출을 한다. 왕우는 1970년대 초반 이렇게 대만,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타국을 돌며 영화를 만들거나 출연하였다. 왕우는 대만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으며 한때 아홉 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다시 홍콩에 돌아온 것은 쇼브라더스를 같이 나온 레이몬드 초(鄒文懷)가 창립한 골든하베스트(Golden Harvest)사의 일본합작영화인 <신 자토이치/부숴라! 중국검>(神拳大戰快手, 1975)의 주연으로 나서면서였다. 이후 왕우는 홍콩에서 다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성룡(成龙, Jackie Chan)과 맞대결을 펼친 <유성검의 대결>(風雨雙流星, 1976), 장철과 만든 외팔이 캐릭터가 권법을 구사하는 새로운 캐릭터로 재탄생하여 동남아시아를 뜨겁게 달구었던 최고의 흥행작 <용호금강>(龍虎金剛, 1973)의 속편인 <독비권왕 대파혈적자>(獨臂拳王大破血滴子, 1976), <소오강호>(笑傲江湖, 1978) 등의 작품에서 녹슬지 않은 무술 실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많은 후배 배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면서 주로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게다가 1981년에는 대만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사생활 역시 세간에 오르내렸다. 증거 부족으로 살인 용의자 신세는 면하게 되지만 배우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데에는 치명타가 되었다. 특히 <부귀열차>(Wealthy Train, 富貴列車, 1986) 출연 이후로 그의 경력은 급속도로 하향세를 그렸고 1990년대에는 거의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왕우가 다시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2002년 장철 감독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이후 2006년 한국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마련한 “쇼브라더스 회고전”을 계기로 방한하는 등 조금씩 공식 활동을 늘려갔다. 2011년 갑작스런 좌반신 마비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고 심지어 말도 못할 정도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엄청난 재활 의지로 병을 완전히 극복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살던 그는 다시 영화 현장으로 복귀하였다. 2011년에 왕우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의 리메이크인 견자단 주연의 <무협>(武俠, 2011)에 카메오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렛츠고!>(保衞戰隊之出動喇!朋友!, 2011), <혈적자: 황제암살단>(血滴子, 2012), <실혼>(失魂, 2013), <황금시대>(黃金時代, 2014) 등의 작품에 잇달아 참여하였다.
작품목록
<호협섬구>(虎俠殲仇, Tiger Boy, 홍콩, 1966)
<변방삼협>(邊坊三俠, Magnificent Trio, 홍콩, 1966)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One-Armed Swordsman, 홍콩, 1967)
<대자객>(大刺客, The Assassin, 홍콩, 1967)
<단장의 검>(斷腸劍, Trail Of The Broken Blade, 홍콩, 1967)
<금검은구>(琴劍恩仇, The Sword And The Lute, 홍콩, 1967)
<심야의 결투>(金燕子, Golden Swallow, 홍콩, 1968)
<돌아온 사나이 외팔이>(獨臂刀王, Return Of The One-Armed Swordsman, 홍콩, 1969)
<용호의 결투>(龍虎鬪, The Chinese Boxer, 홍콩, 1970)
<독비권왕>(獨臂拳王, The One Armed Boxer, 홍콩, 1971)
<흑백도>(黑白道, The Brave And The Evil, 홍콩, 1971)
<탕구탄>(蕩寇灘, The Bloody Fists, 홍콩, 1972)
<마소정보형구>(馬素貞報兄仇, Bloody Struggle, 홍콩, 1972)
<경천동지>(驚天動地, Fast Fists, 홍콩, 1972)
<마소진부형구>(馬素?報兄仇, Rebel Boxer, 홍콩, 1972)
<철권>(한국, 1973)
<용호금강>(龍虎金剛, The Tattooed Dragon, 홍콩, 1973)
<전신탄>(戰神灘, Beach Of The War Gods, 홍콩, 1973)
<해원칠호>(海員七號, Seaman No. 7, 홍콩, 1973)
<냉면호>(冷面虎, A Man Called Tiger, 홍콩, 1973)
<경찰>(警察, Police Force, 홍콩, 1973)
<홍콩73>(香港73, Hong Kong 73, 홍콩, 1974)
<영웅본색>(英雄本色, Knight Errant, 홍콩, 1974)
<사대천왕>(四大天王, Four Real Friends, 태국, 1974)
<스카이 하이>(直搗黃龍, The Man From Hong Kong, 홍콩/오스트레일리아, 1975)
<신권대전쾌쟁수>(神拳大戰快手, Return Of The Chinese Boxer, 홍콩, 1975)
<육아채여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 Challenge Of The Masters, 홍콩, 1976)
<유성검의 대결>(風雨雙流星, The Killer Meteors, 홍콩, 1976)
<호학쌍형>(虎鶴雙形, The Savage Killers, 홍콩, 1976)
<독비권왕 대파혈적자>(獨臂拳王大破血滴子, Master Of The Flying Guillotine, 홍콩, 1976)
<어 퀸스 랜섬>(A Queen’s Ransom, 영국/중국, 1976)
<홍희관>(洪熙官, Executioners From Shao Lin, 홍콩, 1977)
<공부소자>(功夫小子, He Has Nothing But Kung Fu, 홍콩, 1977)
<귀마공부>(鬼馬功夫, Dirty Kung Fu, 홍콩, 1978)
<소림36방>(少林三十六房, The 36Th Chamber Of Shaolin, 홍콩, 1978)
<소오강호>(笑傲江湖, The Proud Youth, 홍콩, 1978)
<천왕두천패>(Challenge Of The Gamesters, 홍콩, 1981)
<적왕지왕>(賊王之王, Winner Takes All, 홍콩, 1982)
<상해탄십삼태보>(上海灘十三太保, Shanghai 13, 홍콩/대만, 1984)
<대복성>(Dragon Attack, 迷니特攻隊, Fantasy Mission Force, 홍콩, 1984)
<교두발위>(敎頭發威, The Master Strikes Back, 홍콩, 1985)
<마등선리기연>(摩登仙履奇緣, Girl With The Diamond Slipper, 홍콩, 1985)
<부귀열차>(Wealthy Train, 富貴列車, Millionaire’s Express, 홍콩, 1986)
<영웅무언>(原振俠與衛斯理, The Seventh Curse, 홍콩, 1986)
<침저악>(Framed, 홍콩, 1989)
<화소도>(火燒島, Island Of Fire, 홍콩, 1990)
<황비홍>(黃飛鴻, Once Upon A Time In China, 홍콩, 1991)
<지존여장>(烈火情仇, Godfather’s Daughter Mafia Blues, 홍콩, 1991)
<무명신탐>(Spiritually A Cop, 홍콩, 1991)
<롼링위>(阮玲玉, The Actress, 홍콩, 1991)
<화두복성>(Shogun And Little Kitchen, 홍콩, 1992)
<천인참>(千人斬, Beheaded 1000, 홍콩, 1994)
<무협>(武俠, Wu Xia, 홍콩, 2011)
<렛츠고!>(保衞戰隊之出動喇!朋友!, Let's Go!, 홍콩, 2011)
<혈적자: 황제암살단>(血滴子, The Guillotines, 중국/홍콩, 2012)
<실혼>(失魂, Soul, 대만, 2013)
<황금시대>(黃金時代, The Golden Era, 중국,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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