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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8년 5월 16일 일본 마사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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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6년 8월 24일 일본 교토 |
본명 |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
수상 | 베니스영화제 국제비평가상(<오하루의 일생>(西鶴一代女, 1952)),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우게츠 이야기>(雨月物語, 1953), <산쇼다유>(山椒大夫, 1954)) |
데뷔 | <사랑으로 소생하는 날>(愛に甦る日, 1923) |
요약 미조구치 겐지는 일본의 영화감독이다. 무성영화기부터 경력을 시작하여 1950년대를 일본영화의 황금기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던 일본 고전기의 거장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가부장제 사회의 억압, 여성의 고통과 희생을 그린 멜로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다. 가장 일본적인 미학적 스타일을 선보인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프랑스를 위시한 서구 비평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오하루의 일생>(西鶴一代女, 1952), <우게츠 이야기>(雨月物語, 1953), <산쇼다유>(山椒大夫, 1954)가 있다.
생애와 이력
일본의 영화감독. 1898년 동경(東京)의 홍고(本郷)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빈민촌에서 자랐다. 그 시기, 아버지는 딸을 유곽에 팔아넘겼고, 어머니는 그의 나이 열일곱살 때 사망했다. 그리고 어린 미조구치는 게이샤로 일하던 누이의 손에 키워졌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미조구치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무엇보다 누이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죄책감은 그의 영화 속 여성 캐릭터에 반영되었다. 독서광이었으며 연극을 좋아해 잠시 서양화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그가 받은 제도교육은 총 6년밖에 되지 않았다. 누이의 소개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20년 닛카츠(日活) 스튜디오에 배우 지망생으로 들어가 2년 뒤 감독으로 승진했다. 일본의 평론가 사토 다다오(佐藤忠男)는 이와 같은 미조구치의 초기 삶의 궤적이 신파 드라마의 플롯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조구치 겐지는 1923년 <사랑으로 소생하는 날>(愛に甦る日)부터 1956년 <수치의 거리>(赤線地帶)까지 40여년 동안 총 10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최고작들은 대부분 오랜 조력자인 시나리오 작가 요다 요시카타(依田義賢)와 여배우 다나카 기누요(田中絹代)와 함께 했다. 그는 말년에 <오하루의 일생>(西鶴一代女, 1952), <우게츠 이야기>(雨月物語, 1953), <산쇼다유>(山椒大夫, 1954)로 베니스영화제에서 3년 연속 수상을 기록하면서 서구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느리고 명상적이며 미학적인 스타일은 가장 일본적인 미학으로 언급되면서 특히 프랑스 비평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미조구치 겐지는 홍등가의 다섯 여인을 다룬 <수치의 거리>(赤線地帶, 1956)를 마지막으로 58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작품세계
미조구치 겐지는 1923년 <사랑으로 소생하는 날>(愛に甦る日)로 데뷔한 해에 11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고유한 스타일은 그 시기 숱한 형식 실험을 거친 끝에 나왔다. 미조구치는 그로부터 33년 동안 90여 편의 영화를 찍었고 그중 절반은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거의 대부분 필름이 소실된 이 시기 영화들 중에는 탐정 활극 <813: 루팡의 모험>(813, 1923), 톨스토이를 각색한 <안개의 항구>(霧の港, 1923), 독일 표현주의 기법을 끌어온 <피와 영혼>(血と靈, 1923), 소련 몽타주 영화의 영향이 엿보이는 <니혼바시>(日本橋, 1929),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기초한 경향(傾向)영화 <도회 교향악>(都會交響曲, 1929)도 있다. 남자 배우가 여자 역할을 했던 당대 관습을 깨고 처음으로 여배우를 기용한 <청춘의 꿈길>(靑春の夢路, 1923), 변사를 두지 않고 자막과 이미지로 서사 전달을 시도했던 <안개의 항구>(霧の港, 1923)에서는 혁신가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그의 조감독의 증언에 의하면, 1923년 관동(関東) 대지진으로 모든 스튜디오가 교토(京都)로 옮겨간 이후에도 그는 매달 동경으로 가서 서구 영화를 관람하고 와 자신의 영화에 적용해보려 했다고 전했다. 최신 외국영화의 기법들을 많이 사용한다는 당대 언론들의 지적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930년에 스스로도 대실패작이라고 간주했던 첫 사운드 영화 <고향 마을>(藤原義江のふるさと) 이후 미조구치는 시대 고증에 힘을 쏟은 <중국인 오키치>(唐人お吉, 1930)와 <폭포의 흰 줄기>(瀧の白絲, 1933)로 이목을 끌기 시작한다. 초기에 '지나치게 섬세하고 밋밋하면서 약한 느낌'(『니카츠 화보』, 1924년 6월호), '메이지적이고 조금은 느슨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인상'은 1930년대 들어 차츰 사라지고 대신 철저한 고증을 거친 완벽한 세트와 의상에 대한 요구, 수십 번에 걸친 연기 리허설로 스태프과 배우들에게 '염라대왕' 또는 '악마'로 불리며 스튜디오나 외부의 간섭을 거부하는 완벽주의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미조구치 영화의 본류는 신파(新派)에 뿌리를 둔 멜로드라마에 있었다. 특히 1925년 동거녀에게 가위로 등을 찔린 사건은 누이에 대한 기억과 함께 여성에 대한 집요한 응시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색이 성과로 나타난 것은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이다. 야마다 이스즈(山田五十鈴)를 주연으로 하여 억압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고통을 그린 두 편의 영화 <오사카 엘레지>(浪華悲歌, 1937)와 <기온의 자매>(祈園の姉妹, 1937)는 미조구치의 이 시기 대표작들이다. 이들은 회사 돈을 횡령한 아버지와 학비를 요구하는 오빠를 위해 회사 사장의 정부가 되었지만 그녀의 희생이 가족의 냉대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오사카 엘레지>), 반항적인 동생과 순응적인 언니인 두 게이샤 자매의 이야기(기온의 자매>)를 보여준다.
<오사카 엘레지>는 일본을 사실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미조구치의 출발점("마침내 나는 보이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이라는 점에서, <기온의 자매>는 롱테이크를 축으로 한 그의 스타일적 원숙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또한 <오사카 여인>(浪花女, 1940)과 <배우 일대기>(芸道一大男, 1941)로 이어지는 예도물(藝道物) 3부작의 첫 번째 영화 <늦가을 국화 이야기>(殘菊物語, 1939)에 나타난 6분에 이르는 쇼트는 지속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일본 가옥의 구조, 프레임을 드나드는 인물의 배치와 어울려 롱테이크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언급되곤 한다. 가부키 배우인 남자에게 헌신하는 여성을 등장시켜 신분 차로 인한 비극적인 로맨스를 그린 이 영화를 노엘 버치는 "미조구치의 영화 중 가장 심오한 여성주의 영화"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전시(戰時)에 '국가의 요청으로' 몇 편의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든 이후 사회 구조로 인해 고통당하는 여성을 내세운 멜로드라마 세계가 본격화된다. 1950년대 미조구치의 걸작들은 아내의 정신분열증에 대한 그의 죄의식 위에 예술가의 인정 욕구가 겹쳐진 최상급의 결과물이었다. <오하루의 일생>(西鶴一代女, 1952)은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의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 소식에 자극받아 국제영화제 수상을 목표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망대로 <오하루의 일생>으로 베니스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 그는 연이어 <우게츠 이야기>(雨月物語, 1953), <산쇼다유>(山椒大夫, 1954)로 3년 연속 베니스영화제 수상의 쾌거를 올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궁녀에서 거리의 창부로 전락하는 한 여인의 인생유전을 그린 <오하루의 일생>은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모든 화면이 구석구석까지 세련된 미술적 배려로 가득하고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화면이 연속되며 크레인의 이동에 의한 카메라로 주인공 오하루를 지속적으로 응시한 감동적인 연출"이라는 격찬을 끌어냈다.
다음 해 발표된 <우게츠 이야기>는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돈에 눈멀어 집밖을 떠도는 남편과 그를 기다리는 아내의 비극을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이미지로 담아낸 귀신 이야기였다.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미조구치를 "그리피스(D.W. Griffith), 에이젠슈테인(EISENSTEIN), 장 르누아르(Jean Renoir)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은 작품"이라 평했고, 에릭 로메르(Eric ROHMER)는 『카이에 뒤 시네마』에 "호머의 서사시나 아서왕 전설에 비견할 만하다"라고 썼다. 세 번째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인 <산쇼다유>는 일본의 유명한 전래동화에 토대한 작품으로, 어머니와 떨어져 노예로 팔려간 남매의 모험담을 처참한 사실주의 비극으로 바꿔놓았다.
영화사적 평가
미조구치 겐지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次郞),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와 함께 일본 고전기의 거장으로 꼽히며, 특히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가부장제 사회 내 억압, 여성의 고통과 희생을 그리는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그가 개척한 여성주의 멜로드라마는 고유한 미학적 스타일 덕분에 현대에까지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평균 쇼트 지속시간(ASL)이 1분에 이르는 롱테이크(long take) 기법, 클로즈업의 배제, 롱쇼트(long shot)의 일관된 사용, 프레임을 두루마리 회화처럼 좌우로 펼쳐 보이는 팬(pan)과 수평 트래킹(tracking)의 카메라 움직임, 특정 환경에 놓인 인간의 운명을 부각시키기 위한 부감(high angle) 쇼트는 그가 즐겨 쓰던 기법들이었다.
프랑스의 영화학자 노엘 버치(Noël BURCH)는 자신의 저서 『머나먼 관찰자에게: 일본영화의 형식과 의미』(To the Distant Observer: Form and Meaning in the Japanese Cinema)에서 미조구치의 스타일적 양식을 고전적 규범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이탈로 언급했을 때, 많은 학자들은 그것을 일본적인 미학의 현시로 읽었다. 일본의 고전기 거장들 중 미조구치를 가장 일본적인 감독이라고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미조구치의 원 씬 원 쇼트(one-scene one-shot: 하나의 쇼트가 길어져 신의 기능까지 하는, 롱테이크를 지칭하는 다른 말) 스타일은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 주창한 리얼리즘 미학과도 맞닿아있다.
미조구치 겐지는 게이샤, 매춘부, 노동자, 아내, 봉건제 공주 등 수많은 여성 인물을 숭고하게 그려낸 일본 최초의 여성주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여성주의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다. 하지만 인물에 거리를 두면서도 감정적 동요를 끌어내는 그의 스타일은 이견 없이 상찬되었다. 그를 신격화시켰던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은 이후 감독으로 활동하게 되었을 때, 미조구치 겐지의 영향을 드러내거나 그에게 오마주(homage)를 바치기도 했다. "모든 것을 통합해 발자크(BALZAC)와 같은 경지에 이르고 싶다"던 미조구치는 "오래된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 속에 살면서도 그 전통을 내부로부터 근대화시킬 수 있었던 작가"(사토 다다오)이며 일본의 미의식을 구현한 가장 일본적인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목록
<사랑으로 소생하는 날>(愛に甦る日, The Resurrection of Love, 일본, 1923)
<고향>(故鄕, Hometown, 일본, 1923)
<청춘의 꿈길>(靑春の夢路, The Dream of Youth, 일본, 1923)
<정염의 거리>(情炎の巷, City of Desire, 일본, 1923)
<패잔의 노래는 슬프다>(敗者の唄は悲し, Failure’s Song is Sad, 일본, 1923)
<813>(813, The Adventure of Arsene Lupin, 일본, 1923)
<안개의 항구>(霧の港, Foggy Harbor, 일본, 1923)
<밤>(夜, The Night, 일본, 1923)
<폐허 속에서>(廢虛の中, In the Ruins, 일본, 1923)
<피와 영혼>(血と靈, Blood and Soul, 일본, 1923)
<고개의 노래>(峠の唄, The Song of the Mountain Pass, 일본, 1924)
<애처로운 백치>(悲しき白痴, The Sad Idiot, 일본, 1924)
<새벽의 죽음>(曉の死, Death at Dawn, 일본, 1924)
<현대의 여왕>(現代の女王, The Queen of Modern Times, 일본, 1924)
<여성은 강하다>(女性は强し, Woman Are Strong, 일본, 1924)
<먼지로 덮인 세상>(塵境, This Dusty World, 일본, 1924)
<칠면조의 흔적>(七面鳥の行衛, Turkeys in a Row, 일본, 1924)
<이토순경의 죽음>(伊藤巡査の死, The Death of a Police Officer, 공동연출, 일본, 1924)
<여름 장마 연대기>(さみだれ草紙(紅殻), A Chronicle of May Rain, 일본, 1924)
<사랑을 자르는 도끼>(恋を断つ斧, Love-Breaking Axe, 공동연출, 일본, 1924)
<환락의 여자>(歡樂の女, A Woman of Pleasure, 일본, 1924)
<곡마단의 여왕>(曲馬團の女王, Queen of the Circus, 일본, 1925)
<특수함정 관동>(噫特務艦関東, Ah, the Special Service Vessel, 공동연출, 일본, 1925)
<무전 부전>(無錢不戰, No Money No Fight, 일본, 1924)
<학창을 떠나>(學窓を出でて, Out of College, 일본, 1925)
<대지는 미소짓는다>(大地は微笑む, The Earth Smiles, 일본, 1925)
<백합은 한탄한다>(白百合は歎く, The White Lily Laments, 일본, 1925)
<붉은 석양에 물들어>(赫い夕陽に照されて, Shining in the Red Sunset, 일본, 1925)
<고향의 노래>(ふるさとの歌, The Song of Home, 일본, 1925)
<거리의 스케치>(街上のスケッチ, Street Sketches, 공동연출, 일본, 1925)
<인간>(人間, The Human Being, 일본, 1925)
<노기대장과 구마씨>(乃木将軍と熊さん, General Nogi and Kuma-san, 일본, 1926)
<동전왕>(銅貨王, The Copper Coin King, 일본, 1926)
<종이인형 하루의 속삭임>(紙人形の春の囁き, A Paper Doll’s Whisper of Spring, 일본, 1926)
<나의 죄(새로운 버전)>(新説己が罪, My Fault New Version, 일본, 1926)
<미친 사랑의 여선생>(狂戀の女師匠, The Passion of a Woman Teacher, 일본, 1926)
<바다의 아이들>(海國男兒, The Boy of the Sea, 일본, 1926)
<돈>(金, Money, 일본, 1926)
<제국의 은총>(皇恩, The Imperial Grace, 일본, 1927)
<뻐꾸기>(慈悲心鳥, The Cuckoo, 일본, 1927)
<인간의 일생 1편>(人の一生 人生万事金の巻 第一篇, A Man’s Life: Money is Everything in Life, 일본, 1928)
<인간의 일생 2편>(人の一生 浮世は辛いねの巻 第二篇, A Man’s Life: This Floating World is Hard, 일본, 1928)
<인간의 일생 3편>(人の一生 クマとトラ再会の巻 第三篇, A Man’s Life: Bear and Tiger Meet Again, 일본, 1928)
<귀여운 내 딸이여>(娘可愛や, My Lovely Daughter, 일본, 1928)
<니혼바시>(日本橋, Nihombashi, 일본, 1929)
<도쿄 행진곡>(東京行進曲, Tokyo March, 일본, 1929)
<아침 해는 빛난다>(朝日は輝く, The Morning Sun Shines, 공동연출, 일본, 1929)
<도회 교향악>(都會交響曲, Metropolitan Symphony, 일본, 1929)
<고향 마을>(藤原義江のふるさと, Home Town, 일본, 1930)
<중국인 오키치>(唐人お吉, Mistress of a Foreigner, 일본, 1930)
<그래도 그들은 간다>(しかも彼等は行く, And Yet They Go, 일본, 1931)
<가신>(時の氏神, The Man of the Moment, 일본, 1932)
<만주, 몽고 건국의 여명>(滿蒙建國の黎明, The Dawn of Manchukuo and Mongolia, 일본, 1932)
<폭포의 흰 줄기>(瀧の白絲, Taki no Shiraito the Water Magician, 일본, 1933)
<기온의 축제>(祇園祭, Gion Festival, 일본, 1933)
<가미가제 특공대>(神風連, The Jimpu Group, 일본, 1933)
<애증의 언덕>(愛憎峠, The Mountain Pass of Love and Hate, 일본, 1934)
<종이학 오센>(折鶴お千, The Downfall of Osen, 일본, 1934)
<동정녀 오유키>(マリアのお雪, Oyuki the Madonna, 일본, 1935)
<오키치 아가씨>(お嬢お吉, Miss Okichi, 공동연출, 일본, 1935)
<야생의 양귀비>(虞美人草, Poppy, 일본, 1935)
<오사카 엘리지>(浪華悲歌, Osaka Elegy, 일본, 1937)
<기온의 자매>(祈園の姉妹, Sisters of the Gion, 일본, 1937)
<사랑과 미움의 협곡>(愛怨峽, The Straits of Love and Hate, 일본, 1937)
<야영의 노래>(露營の歌, The Song of the Camp, 일본, 1938)
<아, 내 고향>(あ 故鄕, Ah My Home Town, 일본, 1938)
<늦가을 국화 이야기>(殘菊物語,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 일본, 1939)
<오사카 여인>(浪花女, The Woman of Osaka, 일본, 1940)
<배우 일대기>(芸道一大男, The Life of an Actor, 일본, 1941)
<겐쿠로 추신구라 전편>(元祿忠臣藏 前, The Loyal 47 Ronin Ⅰ, 일본, 1941)
<겐쿠로 추신구라 후편>(元祿忠臣藏 後, The Loyal 47 Ronin Ⅱ, 일본, 1942)
<단주로 삼대>(團十郞三代, Three Generation of Danjuro, 일본, 1944)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Musashi Miyamoto, 일본, 1944)
<명검객 비주마루>(名刀美女丸, The Famous Sword Bijomaru, 일본, 1945)
<필승가>(必勝歌, Victory Song, 공동연출, 일본, 1945)
<여성의 승리>(女性の勝利, The Victory of Woman, 일본, 1946)
<우타마로를 둘러싼 다섯 여인들>(歌 をめぐる五人の女, Utamaro and His Five Women, 일본, 1946)
<여배우 스마코의 사랑>(女優須磨子の戀, The Love of Sumako the Actress, 일본, 1947)
<밤의 여인들>(夜の女たち, Women of the Night, 일본, 1948)
<내 사랑은 불탄다>(わが戀は燃えぬ, My Love Burns, 일본, 1949)
<유키 부인의 초상>(雪夫人繪圖, Portrait of Madame Yuki, 일본, 1950)
<오유우님>(お遊さま, Miss Oyu, 일본, 1951)
<무사시노 부인>(武藏野夫人, Lady Musashino, 일본, 1951)
<오하루의 일생>(西鶴一代女, The Life of Oharu, 일본, 1952)
<우게츠 이야기>(雨月物語, Tales of Ugetsu, 일본, 1953)
<기온바야시>(祇園囃子, Gion Festival Music, 일본, 1953)
<산쇼다유>(山椒大夫, Sansho the Bailiff, 일본, 1954)
<소문의 여자>(噂の女, The Woman of the Rumor, 일본, 1954)
<지카마츠 이야기>(近松物語, A Story from Chikamatsu, 일본, 1954)
<양귀비>(楊貴妃, The Princess Yang Kwei-fei, 일본/ 홍콩, 1955)
<신 헤이케 이야기>(新 平家物語, New Tales of the Taira Clan, 일본, 1955)
<수치의 거리>(赤線地帶, Street of Shame, 일본, 1956)
<오사카 스토리>(大阪物語, Osaka Story, 일본, 1957, 제작에 들어가지 못한 영화.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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