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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세계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수진 감독은 졸업을 앞두고 “내 인생에 영화 한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에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그가 2004년 발표한 단편 영화 <아빠>(Papa, 2004)는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딸이 자해로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것을 본 아빠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하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과 근친간의 성이라는 위험한 소재를 진지한 시선으로 다룬 이 영화는 200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한국영상자료원장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다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두 번째 단편 <아들의 것>(Son's, 2006)은 갯벌에서 홀로 생계를 꾸려 가시는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2007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07년에는 단편 <적의 사과>(Enemy's Apple)로 신인감독들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집회 현장에서 대오를 이탈해 마주하게 된 전투경찰과 노동자가 서로에게 적의와 공감을 넘나드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점을 블랙코미디다. 각각 팔과 다리를 다친 두 남자는 그 고립의 상황에서 적대를 유지하며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어떻게 해서든 그 골목을 빠져나가야 하는 생존의 문제로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 둘의 복잡한 감정 전개로 영화는 “개개인들을 폭력과 적대로 몰아넣는 것은 집단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으로 이수진 감독은 2008년 대한민국영상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수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단편영화를 연출한 것과 동시에 그는 이진우 감독의 <팔월의 일요일들>(Sundays In August, 2005), 허진호 감독의 <행복>(Happiness, 2007) 등의 영화 연출부로 일하며 현장경험을 쌓았다.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일찌감치 한국 영화계의 주목해야할 신예로 평가받아온 이수진은 2013년 첫 장편영화 <한공주>(Han Gong-ju)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집단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한공주가 새 학교로 전학을 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다시 웃음과 희망을 찾지만 이전 학교의 학부형들이 그녀를 찾아와 다시 한 번 일상이 파괴되는 내용의 영화다. 유사한 사건을 다룬 기존의 영화들이 사건 혹은 사건과 관계된 이들의 복수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전개하며 분노를 주된 감정으로 전달했다면, <한공주>는 사건 이후의 삶, 피해자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냈다는 차별성이 있다. 한공주의 담담한 표정과 그녀가 다시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동안 관객은 우리의 시선과 태도를 회의하게 한다.

이 영화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타이거상,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과 국제비평가상,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 등을 비롯해 국내외 유수 영화제의 트로피를 끊임없이 들어올리며 2013년 가장 주목받는 데뷔작이 되었다. 마라케시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인 마틴스콜세지 감독은 “미장센, 이미지, 사운드, 편집, 배우들의 연기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며 극찬했고,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도 “놀랍도록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 여주인공의 연기도 너무 놀랍고 훌륭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외에도 “역대 영화사상 가장 파괴적인 작품”, “놀랍고도 압도적인 데뷔작”,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한 시도 흥미를 놓치지 않는다” 등 해외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이수진 감독은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과 탄탄한 연출력, 치밀한 스토리 전개 방식 등으로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평가 받으며 향후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중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작품 목록

<아빠>(Papa, 한국, 2004, 단편)
<아들의 것>(Son's, 한국, 2006, 단편)
<적의 사과>(Enemy's Apple, 한국, 2007, 단편)
<한공주>(Han Gong-ju, 한국,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