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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플래허티
다른 표기 언어 Robert Flaherty 동의어 로버트 조지프 플래허티, Robert Joseph Flaherty, 로버트 J. 플래허티, Robert J. Flaherty출생 | 1884년 2월 16일, 미국 미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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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1년 7월 23일, 미국 버몬트 |
본명 | 로버트 조셉 플래허티(Robert Joseph Flaherty) |
수상 | 193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최우수외국영화상(<아란의 사람들>), 1948년 아카데미 각본상 노미네이트(<루이지애나 스토리>) |
데뷔 |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1922) |
요약 로버트 플래허티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다큐멘터리와 민족지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1922)를 시작으로, <모아나>(Moana, 1926), <아란의 사람들>(Man of Aran, 1934), <대지>(The Land, 1942), <루이지애나 스토리>(Louisiana Story, 1948) 등의 작품을 통해 시네마-베리테(cinéma-vérité),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등 세계영화사의 주요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애와 이력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본명은 로버트 조셉 플래허티(Robert Joseph Flaherty)로 1884년 2월 16일 미국의 미시간에서 아일랜드 출신 광물탐험가이자 철광석 시굴자인 아버지 로버트 헨리 플래허티(Robert Henry Flaherty), 어머니 수잔 클로크너(Susan Klockner) 사이에서 칠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미네소타, 미시간, 온타리오의 광산 지역에서 보냈는데,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그는 열네 살이 되던 1898년 캐나다 토론토의 북캐나다 칼리지(Upper Canada College)에 들어가 2년 간 교육을 받았다. 1902년부터 1903년까지는 미시간 광산 칼리지(Michigan College of Mines)에서 지질학, 광물학, 지리학 등을 공부했고, 그곳에서 만난 프란세스 후버드(Frances Hubbard)와 1914년 결혼했다. 보스톤 출신 탐험가의 딸인 후버드는 플래허티의 탐사와 영화 작업에서 중요한 협력자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과 유년기 광산 지역에서의 생활은 플래허티로 하여금 캐나다 북부지역, 북극, 아일랜드 등에서 자연과 투쟁하며 생존해 나가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다큐멘터리 작업의 동력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인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1922)를 데뷔작으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인간과 자연에 관한 영화를 만들던 그는 1951년 7월 23일 67세에 미국의 버몬트에서 대뇌 혈전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세계
로버트 플래허티는 1910년부터 1920년까지 캐나다 북극 지역에서 철광석 탐사작업을 하면서 그 지역에 사는 에스키모들인 ‘이누이트(Inuit)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삶을 사진과 영화에 담는다. 플래허티의 첫 번째 영화적 시도는 1914년 캐나다 북부의 바핀 아일랜드(Baffin Island)의 모습을 여행기 형식으로 필름에 기록한 것이었는데, 1915년 3월 30일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에서 수천 장의 사진 전시와 더불어 상영이 되었다. 그러나 1913년에서 1914년의 기간 동안 촬영한 북극과 에스키모들에 관한 몇 편의 필름들과 함께 이 필름들도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1919년 프랑스 모피회사인 레비용 회사(Revillon Frères)의 지원을 받은 플래허티는 다시 캐나다 북극 지역에서 약 16개월 동안 머물면서 대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누이트족의 생활을 ‘나누크(Nanook)’와 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영화로 담아낸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와 민족지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1922)이다. <북극의 나누크>는 극장 개봉과 흥행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장편 기록영화로 당시 파테 영화사(Pathé Exchange)가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배급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유럽과 러시아, 아시아에서까지 크게 성공하면서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기념비가 되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이후 1920년대 초까지 다큐멘터리는 이국적인 풍물을 기록한 일화적 단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까지 다큐멘터리라는 용어와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필름에 담긴 생생한 현실에 흥미를 느끼는 관객층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북극의 나누크>는 기록영화였지만 극영화처럼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나누크), 보편적인 주제(대자연 속의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 감동, 유머, 긴장감 등 다양한 감정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가 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당시 관객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영화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북극의 나누크>의 성공에 힘입은 플래허티는 1923년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Paramount) 영화사로부터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의뢰 받아 연출한다. 이 영화가 아내이자 협력자인 프란세스 후버드와 함께 서구 문명과 식민지 제국주의 이전의 사모아 원주민들의 문명과 삶을 담아낸 <모아나>(Moana, 1926)이다. <모아나>는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수려한 영상미를 위한 재연과 인위적인 연출이 과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모아나>는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영국 다큐멘터리 운동의 선구자였던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이 일간지 ‘뉴욕 선(New York Sun)’에 이 영화에 대한 평론을 게재하면서 ‘다큐멘터리(documentary)'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개념이 정립, 일반화되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뉴욕 선’에 기고한 평문에서 그리어슨은 “폴리네시아의 한 젊은이와 그의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영상보고서인 <모아나>는 다큐멘터리적인 가치를 지닌다”라고 썼다.
<모아나> 이후 제작자들과의 불화로 몇 편의 단편 다큐멘터리 작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소련에서의 촬영 계획도 무산되었다. 1930년 존 그리어슨은 플래허티를 영국으로 초청하는데, 플래허티는 자신의 최초 유성영화인 단편 다큐멘터리 <인더스트리얼 브리튼>(Industrial Britain, 1933)을 아더 엘튼(Arthur Elton), 바질 라이트(Basil Wright)와 공동 연출하고, 같은 해 그리어슨의 제작 하에 <영국의 유리공들>(The Glassmakers of England, 1933), <영국 도공>(The English Potter, 1933), <영국 명장들의 기술>(Art of the English Craftsman, 1933) 등 일련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영국 체류 시절 플래허티는 아일랜드 아란 섬의 어부들과 원주민들의 삶을 다룬 대표작 <아란의 사람들>(Man of Aran, 1934)을 만드는데, 이 영화는 1934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영화상(Mussolini Cup for Best Foreign Film)을 수상했다.
플래허티는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간간히 극영화 작업에도 손을 댔다. W.S. 반 다이크(W.S. Van Dyke)와 공동으로 연출한 <남해의 하얀 그림자>(White Shadows in the South Seas, 1928),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와 협업한 <타부>(Tabu: A Story of the South Seas, 1931), 졸탄 코르다(Zoltan Korda)와 인도에서 촬영한 <코끼리 소년<(Elephant Boy, 1937) 등이 극영화 대표작들이다. 극영화 중에는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적인 작품도 있었지만, 자신이 어렵게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와 섞여 상업적인 목적에 활용되는 모습에 실망한 플래허티는 다시 다큐멘터리에 전념한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복귀하여 미국 농업성의 주문 제작에 의해 만든 <대지>(The Land, 1942)는 펜실바니아 주의 농업 기계화, 토지 개척을 다룬 계몽 다큐멘터리이며, 마지막 연출작인 <루이지애나 스토리>(Louisiana Story, 1948)는 루이지애나 지방의 석유 산업에 관한 다큐드라마 형식의 작품이다. 뉴저지(New Jersey)주의 스탠다드 석유회사(Standard Oil Company)의 지원으로 제작된 <루이지애나 스토리>는 1948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아내였던 프란세스 후버드의 회고를 빌자면, 로버트 플래허티는 “모든 예술은 일종의 탐험이다. 발견하고 알리는 것은 모든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영화사적 평가
로버트 플래허티의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은 참여적이고 직관적이었다. 촬영 대상에 대한 치밀한 사전 취재가 선행되었고, 연출자와 대상 간의 친밀한 관계가 영화에 드러나며, 시나리오나 구성안 없이 대상의 행위에 영향을 주는 카메라를 사용했다. <북극의 나누크>에서처럼 대상에게 촬영의 과정을 사전에 이해시키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플래허티의 다큐멘터리는 객관적 과학성만을 견지하는 민족지 영화나 인류학 영화의 범주에 머물지 않고 자연 속의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시적, 우화적 표현까지 담아내려는 영화적 시도를 보여준다. 감독과 대상 간의 접촉에서 유발되는 효과, 참여적 성격을 강조하는 ‘시네마-베리테(cinéma-vérité)’, 감독의 개입 없이 객관적 관찰만으로 구성되는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뿐 아니라,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등 세계영화사의 주요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소비에트 몽타주 이론가이자 감독이었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Sergueï M. Eisenstein)은 “우리는 다른 어떤 외국 영화에서보다 <북극의 나누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플래허티에게서 수혈된 영감을 증언했다.
작품 목록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미국/프랑스, 1922, 다큐멘터리)
<도공>(The Potterymaker, 미국, 1925, 단편, 다큐멘터리)
<모아나>(Moana, 미국, 1926, 다큐멘터리)
<24달러 섬>(The Twenty-Four-Dollar Island, 미국, 1927, 단편, 다큐멘터리)
<남해의 하얀 그림자>(White Shadows in the South Seas, 미국, 1928, 공동연출)
<타부>(Tabu: A Story of the South Seas, 미국, 1931, 공동연출)
<영국의 유리공들>(The Glassmakers of England, 영국, 1933, 단편, 다큐멘터리)
<영국 도공>(The English Potter, 영국, 1933, 단편, 다큐멘터리)
<인더스트리얼 브리튼>(Industrial Britain, 영국, 1933, 단편, 다큐멘터리, 공동연출)
<영국 명장들의 기술>(Art of the English Craftsman, 영국, 1933, 단편, 다큐멘터리)
<아란의 사람들>(Man of Aran, 영국, 1934, 다큐멘터리)
<코끼리 소년>(Elephant Boy, 영국, 1937, 공동연출)
<그것은 모두 사실이다>(It’s all true, 미국, 1941, 원작)
<대지>(The Land, 미국, 1942, 단편, 다큐멘터리)
<루이지애나 스토리>(Louisiana Story, 미국, 1948, 다큐-픽션)
<타이탄: 미켈란젤로 이야기>(The Titan: Story of Michelangelo, 스위스/독일, 1950, 다큐멘터리)
저서
『나의 에스키모 친구들: 북극의 나누크』(My Eskimo friends: ‘Nanook of the north’, 1924, 프란세스 후버드 플래허티(Frances Hubbard FLAHERTY)와 공저)
『사모아』(Samoa, 1932)
『캡틴의 의자: 북극 이야기』(The captain’s chair: A story of the North, 1938)
『로버트 J. 플래허티』(Robert J. Flaherty, 1965, 앙리 아젤(Henri AGEL)과 공저)
『에스키모 콤스탁 이야기』(The Story of the Comstock the Eskimo, 1968)
『코막: 한 에스키모 사냥꾼의 실화』(Comock: The True Story Of An Eskimo Hunter,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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