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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와 이력

본명이 장-마리 모리스 쉐레 Jean-Marie Maurice Scherer인 에릭 로메르는 1920년 프랑스 낭시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무렵에는 질베르 코르디에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썼으며, 1950년대부터는 에릭 로메르라는 이름으로 영화평론을 시작하였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프랑스의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역임하는 등 평론가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누벨바그 세대의 다른 감독들처럼 평론가 활동과 창작활동을 병행하였던 로메르는 1962년 바벳 쉬뢰더Barbet Schroeder와 더불어 영화사 '로장주 영화사Les films du Losange'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에 뛰어든다. 평생 약 50여편의 영화를 연출하며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던 에릭 로메르는 2010년 1월 11일 여든 아홉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한다. 단순하고 간결했던 그의 영화처럼 그의 묘비에는 '모리스 쉐레'라는 그의 본명만이 짧게 새겨져 있다.

작품세계

에릭 로메르의 영화세계는 '도덕 이야기' 연작과 '희극과 속담' 연작, '계절' 연작 등 특정 주제에 따른 연작 영화로 구분 가능하다.

연작 영화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도덕 이야기'는 1962년 연출한 단편영화 <몽소 빵집 La Boulangère de Monceau>으로 시작하여, <수잔느의 경력, La Carrière de Suzanne>(1963), <수집광 La Collectionneuse>(1967),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Ma nuit chez Maud>(1969), <클레르의 무릎, Le Genou de Claire> (1970), <사랑, 오후, L'Amour l'après-midi> (1972) 여섯 편으로 구성된다. '도덕 이야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1969년 연출작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Ma nuit chez Maud>이다. 자유주의자인 모드라는 여인과 도덕율에 얽매인 중산층 지식인 사이에 벌어지는 하룻밤 사이의 짧은 만남을 소재로 한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후보로 오르면서 에릭 로메르는 감독으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도덕 이야기' 연작 이후 에릭 로메르는 유명한 문학작품을 각색한 두 편의 영화 (1976), <갈리아인 퍼시벌 Perceval le Gallois>(1978)을 연출한다.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릭 로메르는 '희극과 속담'이라는 새로운 연작을 내놓는다. <비행사의 아내, La Femme de L’Aviateur>(1981), <아름다운 결혼, Le Beau Mariage>(1982), <해변의 폴린, Pauline à la plage>(1983), <달 밝은 밤, Les Nuits de la Pleine Lune>(1984), <녹색광선, Le Rayon vert>(1986), <내 친구의 친구, L’Ami de Mon Ami>(1987) 여섯 편으로 구성된 '희극과 속담' 시리즈는 프랑스 사회에 널리 알려진 격언이나 속담 등을 빗대어 현대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연작이다. 이 연작 시리즈 중에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상 <녹색 광선>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릭 로메르는 '계절' 연작을 새롭게 시작한다. <봄 이야기 Conte de Printemps>(1989), <겨울 이야기 Conte d’Hiver>(1991), <여름 이야기 Conte d'ete>(1996), <가을 이야기 Conte d’automne>(1998)로 이어진 이 연작 역시 일상적인 소재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에릭 로메르 특유의 연출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에릭 로메르는 프랑스 혁명 시기를 무대로 한 <영국 여인과 공작 L'Anglaise et le Duc>(2001),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트리플 에이전트 Triple Agent>(2004), 그리고 오노레 뒤르페의 작품을 각색한 <아스트레스와 셀라동의 사랑>(2007)을 연출하면서 건재를 과시한다. 이 중에서 오를레앙 공작과 그의 정부인 영국 귀족의 삶을 다룬 <영국 부인과 공작>은 18세기 말 파리를 재현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으로, 현장 촬영을 중시하던 로메르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할 때 파격적인 변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사적 평가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 트뤼포 등 누벨바그 세대 감독들이 1960년대 초에 일찍이 명성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에릭 로메르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주목을 받은 셈이지만 평범한 인물들의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진지한 주제를 도출하는 그의 능력은 그 어떤 감독보다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리얼리티의 강조, 간결한 형식미, 그리고 인간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중요한 특징으로 하고 있다. 리얼리티를 중시한 탓에 인위적인 세트보다는 현장 촬영을 선호하였으며, 배우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즉흥 연출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다. 사운드트랙과 같은 인위적인 장치 역시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다. 간결한 형식미의 추구는 그의 모든 영화들에 나타나는 단순한 이야기구조와 소박한 미장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보다는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는 감독 본인의 고백처럼 그의 영화는 길고 현란한 대사를 통해 인간들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들을 드러낸다. 스스로 '행동보다는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던 그의 영화는 긴 대사로 인해 소설같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작품목록

<범죄자의 일기>(Journal d’un scélérat, 프랑스, 1950, 단편)
<소개 혹은 샤를로프와 그녀의 스테이크> (Présentation ou Charlotte et son steak, 프랑스, 1951, 단편)
<베레니스>(Bérénice, 프랑스, 1954, 단편)
<크로이체르 소나타>(The Kreutzer Sonata, La sonate à Kreutzer, 프랑스, 1956, 단편)
<베로니크와 그녀의 욕심>(Véronique et son cancre, 프랑스, 1958, 단편)
<사자 자리>(The Sign of Leo,Le Signe Du Lion, 프랑스, 1959)
<몽소 빵집>(La Boulangère de Monceau,The Bakery Girl of Monceau, 프랑스, 1962, 단편)
<수잔느의 경력>(Suzanne’s Career,La Carriere De Suzanne, 프랑스, 1963)
<파리의 나자>(Nadja à Paris, 프랑스, 1964, 단편)
<에트왈르 광장>(Place de l’Étoile, 프랑스, 1965)
<현대의 여학생>(Une étudiante d’aujourd’hui, 프랑스, 1966, 단편)
<수집광>(La Collectionneuse,The Collector, 프랑스, 1967)
<몽포콘의 농부> (Fermière à Montfaucon 1968, 프랑스, 단편)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My Night at Maud’s,Ma Nuit Chez Maud, 프랑스, 1969)
<클레르의 무릎>(Claire’s Knee,Le Genou de Claire, 프랑스, 1970)
<사랑, 오후>( L’Amour l’après-midi, 프랑스, 1972)
(The Marquise of O,Die Marquise Von O, 독일/프랑스, 1976)
<갈리아인 퍼시벌>(Perceval, le Gallois, 프랑스/이탈리아/독일, 1978)
<비행사의 아내>(The Aviator’s Wife/La Femme de L’Aviateur, 프랑스, 1981)
<아름다운 결혼>(A Good Marriage/Le Beau Mariage, 프랑스, 1982)
<해변의 폴린>(Pauline at the Beach/Pauline à la plage, 프랑스, 1983)
<늑대야, 너는 어디 있니?> (Loup, y es-tu ?, 프랑스, 1983)
<달 밝은 밤>(Full Moon in Paris,Les Nuits de la Pleine Lune, 프랑스, 1984)
<녹색광선>(Le Rayon vert, 프랑스, 1986)
<식기 전에 커피 마셔> (Bois ton café, il va être froid, 프랑스, 1987)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Four Adventures of Reinette and Mirabelle, 프랑스, 1987)
<내 친구의 친구>(Boyfriends and Girlfriends,L’Ami de Mon Ami, 프랑스, 1987)
<봄 이야기>(A Tale of Springtime,Conte de Printemps, 프랑스, 1990)
<겨울 이야기>(A Tale of Winter,Conte d’Hiver, 프랑스, 1992)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The Tree, the Mayor and the Mediatheque, 프랑스, 1993)
<파리의 랑데부>(Rendezvous in Paris, 프랑스, 1995)
<여름 이야기>(A Summer’s Tale,Conte d’ete, 프랑스, 1996)
<가을 이야기>(Autumn Tale,Conte d’automne, 프랑스, 1998)
<영국 여인과 공작>(The Lady and the Duke,L’Anglaise et le Duc, 프랑스, 2001)
<트리플 에이전트>(Triple Agent,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러시아, 2004)
<붉은 소파>(Le canapé rouge, 프랑스, 2005, 단편)
<아스트레스와 셀라동의 사랑>(The Romance of Astrea and Celadon,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2007)